2015년 건국이의 하루

K대에 재학 중인 가난한 자취생 건국이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FTA가 체결된 이후 건국이의 생활은 변했다. 요즘 건국이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영어. 영어 공부의 압박은 전보다 더 심해졌다. 남들은 어학원에, 과외까지 하는 등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엔 유학생들도 너무 늘어나 영어 강의도 대폭 늘었다. 건국이는 탄식한다. “한글로도 어려운 걸 영어로 어떻게 알아들으란 말이야!”

그런 와중에 학교는 내년에도 등록금이 오를 수 있다고 술렁거린다. FTA 이후 본격적으로 기업식 경쟁체제에 돌입한 대학들에게 등록금도 하나의 경쟁 수단이 되어버렸나 보다. 영어공부는 학원 다니지 않고 스스로 해서 학원비를 아끼면 되지만 등록금이 오르면 정말 대책이 없다. 대학 공부를 스스로 한다고 학교를 다니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이런 저런 걱정에 건국이는 속도 별로 좋지 않다. 학생식당의 메뉴는 이런 건국이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겨준다. 메뉴는 느끼한 소고기인데 김치마저 ‘미국산’ 꼬리표를 달고 있다. 미국산 김치는 아무리 정을 붙이려고 해도 입에 맞지 않는다. 모든 식자재가 거의 미국산이니 피해갈 수 없다고는 하지만 씁쓸하다. 대충 먹고 나서 간식을 사러 갔는데도 상황은 똑같았다. 미국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건국이를 반기는 각종 수입 과자들. 우리나라 과자와 달리 좀 부담스럽다. 이걸 먹으면 꼭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Um....... It's delicious”

원래 여름 방학 때쯤이면 항상 농활도 갔었지만 이제는 갈 일이 없다. 미국으로부터 값싼 고기와 곡물, 과일이 들어옴에 따라 대부분의 농축산업계는 타격을 입었고, 결국 농가들이 하나씩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건국이는 농활을 갈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처럼 자신을 아껴주셨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생각나 아련해졌다. 이번 FTA로 농가 어르신들은 그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피해액은 억단위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가혹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FTA체결 당시 그들이 생업을 지켜내기 위해 했던 모든 투쟁들이 결국 물거품으로 됐다는 사실이 건국이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울한 기분을 영화나 음악으로 위로받고 싶었다.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건국이에게 최근 들어 쏟아져 유입되는 팝송이나 헐리우드 영화만큼은 FTA의 반가운 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그것들을 ‘소장’하기는 어려워졌다. FTA 발효 시 개정된 저작권법 때문이다. 저작권법이 엄격하게 개정됐다는데, 대략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는 컨텐츠를 컴퓨터에 일시적이라도 저장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일시적 저장’의 범위가 너무 모호한 게 사실이지만 괜한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건국이는 소장 자체를 포기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제 건국이에게 음악과 영화는 마치 노래 제목처럼 ‘가질 수 없는 너’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FTA 이후, 작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건국이는 이전보다 자신의 생활이 더 좋아졌는지는 크게 실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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