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일을 그만두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정작 취업을 하자마자 드는 생각이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였지?’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취업대란이란 이 시대에 당돌하게 모난 인간이란 낙인을 찍어준 내 어리석음에 감사했다. 설령 내 어쭙잖은 당돌함에 어이없어하며 일잔을 권하던 과선배의 말처럼 땅을 치고 후회하는 날이 온다 해도 말이다. 원하는 방향 따윈 상관없이 결승선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는 저 경주마들과 내가 무엇이 다를까란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만하자.”
사회란 들판에 처음 던져진 야인들의 마음은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고 있어도 서로 알고 있음이라. 그녀는 늘 그랬듯 담담하게 그리고 무척이나 따뜻하게 돌아섰다. 그래서 더욱 내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이 되어버렸다. 내 마지막 월급으로 산 그녀의 화장품. 내 투박한 손으로 멋쩍어하며 준비한 그녀를 위한 선물이다. 어쩌면 이게 내가 누군가를 위해 산 마지막 화장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스 내리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낯익은 통기타 소리가 들려 왔다. 예전 까까머리 시절에 가슴 설레 했던 어쿠스틱 선율이 창밖에 붙어, 흐느적 흘러내리는 불빛과 함께 내 맘을 시리게 했다. 그 뒤로 DJ의 클로징 멘트와 함께 Back to the real life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뜨끔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real life일까? 아니면 내가 찾아야 되는 곳이 진짜 real life일까?
뒤에서 비 온다 투덜대는 아주머니들의 짜증 섞인 대화가 들려왔다.
릴레이소설 1261호 (4호차) 키워드 : 경마, 화장품, 통기타
제목 그녀에게 듣는 ‘그’에 대한 얘기란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다음호 키워드 :
김준석 법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