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고독과 상실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작년 「1Q84」로 서점가에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던 이 놀라운 문학가는 다시금 자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각인 시켜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큼 독특한 문학 세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만큼은 정말로 사실적으로 고독과 상실을 그리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젊은 세대의 고독과 슬픔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지만 어째서인지 퇴폐적이고 음란한 소설로 오해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군부대에서는 금서 목록에까지 올라와있다.

상실의 시대가 출판될 당시 일본은 경제적 부흥기가 최고조에 오른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부흥을 가져온 자본주의적 사회구조는 그들에게 가족의 해체와 이념의 상실 등 다양한 ‘허무’를 던져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허무의 시대를 반영하여 리얼리즘 로맨스 소설인 상실의 시대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상실의 시대가 한국에 출판되었을 때 이 소설은 파격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적나라한 성의 묘사, 사상과 이념이 끼어들지 않는 인간 본연의 고뇌와 청춘의 괴로움을 다룬 소설은 격렬했던 1980년대의 한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소설은 유래 없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고 유명세와 동시에 강렬한 섹스장면이 주목 받게 되어 야한 소설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뿌리내려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편견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상실의 시대는 결코 야하기만 한 소설이 아니다. 이 속에는 청춘의 고독을 짙게 담겨 있다. 주인공인 와타나베는 17살에 자살했던 친구 기즈키의 애인인 나오코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나오코는 기즈키가 죽자 자살충동에 휩싸이며 와타나베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녀는 자아의 한 축이었던 기즈키의 죽음과 함께 자신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와타나베 역시 나오코를 상실하고서 고독과 허무에 빠지게 된다.

지나친 허무 속에서 자신마저도 상실한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현재 한국의 20대와 너무도 닮아 있다. 모든 사상과 이념이 해체되고 무엇을 믿고 사랑해야할지 모를 방황하는 우리 20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20대로서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면 상실의 시대 속 와타나베에게서 본인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아픔은 본질적으로 우리들의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상실의 시대는 연애 소설이라는 장르를 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 된 것이다. 이것이 하루키가 말하는 상실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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