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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수상작] 세 번째 눈
이가영(국문4) | 승인 2012.01.02 23:30

2011년 6월 11일 AM 8시 50분

AM 8시 50분, 의뢰자 A는 수업을 듣기 위해 나간다. 나는 지금부터 A가 관찰하기를 요청한 대상 B를 관찰할 것이다.

10시, B가 일어난다. B는 일어나서 연보라색 커튼을 내리고, B의 침대 맞은편에 있는 A의 침대로 가서 눕는다. B는 다시 잠이 든다. B는 11시 30분에 다시 일어난다. B는 일어나서 이불을 정돈한다. 그리고 옷을 훌떡 벗고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삼십 분 후 B는 알몸으로 나와 자연스럽게 A의 서랍장에 있는 드라이기를 꺼낸다. B는 머리를 말리며 흥얼거린다. 머리를 다 말린 B는 드라이기를 말아서 A의 서랍에 넣는다. 그리고 멈칫하더니 그 서랍에서 작은 수첩을 꺼낸다. B는 수첩을 대충 훑고는 다시 제 자리에 둔다. PM 12시 15분, B는 A의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간다. 12시 30분에 B가 컵라면을 들고 들어온다. B는 A의 노트북을 켜고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B는 자신의 사타구니를 긁으며 A가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을 본다. B는 컵라면을 먹으며 A가 저장해 놓은 드라마를 본다. 2시, B는 코를 파고 코딱지를 A의 책상 밑에 붙인다. 3시, B는 노트북을 끄고 A의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꺼내 A의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5시, B는 책에 샤프로 옅은 체크를 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 A의 의자에 앉아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B는 입고 있던 A의 옷을 다시 A의 옷장에 넣어 놓는다. 5시 반, B는 A의 향수를 뿌리고 밖으로 나간다.

세 번째 서랍 오른쪽 구석에 생리대가 있다. 생리대가 없어지기 시작한건 한 달 전부터다. 그녀가 내 물건을 쓰고 있다는 것은 학기 초부터 알고 있었다. 몇 번의 경고는 도리어 나를 의심병 환자로 만들었다. 요즘 내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는 내 룸메이트의 도벽이다. 도벽뿐만이 아니라 어떤 날은 내 옷장에서 그녀의 향수 냄새가 날 때도 있었다. 경찰서에 전화해서 오늘은 룸메이트가 내 샴푸를 두 번이나 펌핑했다고 곡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내 룸메이트가 된 건 올 초의 일이다. 학교에 입학한지 사년 만에 벌써 여섯 번째 룸메이트를 맞이했다. 사년에 걸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룸메이트를 맞이하고 내보내며 쌓인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그건 바로, 대화는 최대한 피하며 적당한 선을 긋는 것이다. 그것만이 평화롭고도 안락한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녀 쪽에서 이 질서를 더 원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평안했다.

지난 삼 개월 동안 그녀와 지내고 있는 이 기숙사 방은 어디론가 떠나는 기차 칸 같았다. 마주보고 있는 네 좌석에서 나는 순방향석에 앉아 창밖을 본다. 그녀는 내 앞쪽 옆 자리에 앉아 내가 보고 있는 창과 반대편인 창을 보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도착지가 어디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한마디도 없다. 서로 모르는 게 편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반경 일 미터 안에서, 평화를 공유하며 함께 지냈다.

이 평화로움을 먼저 깬 것은 엄연히 그 쪽이다. 룸메이트가 망할 도둑년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렇게 까지 열이 받았을 리 없다. 어쩌면 내 활발한 입놀림 덕분에 그녀는 이미 캠퍼스에서 도둑년으로 소문나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도 꿋꿋이 나를 더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룸메이트 덕분에 친구들도 나와 합심해서 이 사건에 대해 벼르고 있다. 내가 이 좁은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게 된 것도 다 똑똑한 내 친구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자는 척 하다가 현장을 덮치라니까, 너도 같이 걔 물건을 써, 지문 인식을 해보는 건 어때, 네 음식에 설사약을 타봐, 등등 솔깃한 조언들을 해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끌리는 것은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요리조리 발뺌을 하며 나를 미친 여자로 몰아가는 룸메이트에게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는 것이다.

야, 우리 엄마 가게에서 돈이 자꾸 없어졌는데, CCTV 확인해보니까 알바가 야금야금 빼먹었던 거였잖아.

그래,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 하느님, 드디어 해결책이 생긴 것이다. 나는 이 카메라가 나를 구원해 줄 것만 같았다.

어차피 술자리에서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일이면 ‘지나가는 행인1’ 쯤으로 기억 될 사람들과 휴대전화는 오고가고, 오고가는 술잔 속에 그의 입술과 그녀의 입술도 오고갔다. 그리고 나는 술잔과 함께 허공을 부유한다. 기분이 좋다. 흰나비의 날개 위에 앉아, 엉덩이를 둥둥 들썩거리며 떠다니고 있다. 둥둥둥. 나비의 조심스런 날개 짓이 향기가 있는 곳에 닿았다. 고개를 약간 돌려 두시 방향, 내 시선이 그에게 머무른다. 심장도 엉덩이를 따라 둥둥 거린다. 그리고 내 목소리도 둥둥 떠서 그에게 간다.

“이름이 뭐에요?”

나도 모르게 불쑥 나와 버렸다. 그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쳐다본다.

“어, 아까 말했는데, 저 주인영이요.”

“응? 잘 안 들린다. 주이형?”

“아니요, 서인영할 때 그 인영에다가 주요, 쏘주할 때 주.”

“아…….”

“누나 이름은 새미 맞죠? 박새미.”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주위가 소란스러워 소리를 질렀더니, 내 목소리와 그의 목소리가 섞여 한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 돈다. 어차피 술자리에서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지만, 주인영이라는 세 음절이 너무도 똑 부러지게 내 귓구멍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해버렸다.

나와 친구들은 학교 근처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며, 내 룸메이트를 안주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옆자리에 음식에 설사약을 타라고 제안했던 친구네 과 후배들이 있었다. 얼굴도 반반하고 수도 맞기에 우리는 그 친구를 부추겨서 합석을 했다.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릴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미 남자로 다가온 이 귀여운 것들을 어떻게 데리고 놀아볼까 하는 생각에 얼굴은 더 붉어지고 혀는 더 꼬이고 몸도 더 달아올랐다. 인영은 어느새 내 옆으로 와 그의 허벅지 위에 내 손을 얹어 놓고, 그의 손으로 포근히 덮었다.

 

   
▲ ⓒ일러스트 이호연 기자

 

인영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따금씩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어지럽다고 했던 것 같다. 술자리가 파하고 인영만 내 옆에 남았다. 내 몸은 고기 연기가 되어 흘러 흘러서 환풍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걸었다. 흐물거리는 내 속에서 인영이가 헤엄을 쳤다. 옆에선 새미누나 정신 차려야 되요, 라는 말만 계속 반복하며 인영이가 내 어깨를 잡아 주고 있다.

“야……, 야, 너 근데 어디가.”

“좀 쉬러, 누나 힘들잖아.”

“응…….”

발칙한 것, 귀여운 것, 뻔해서 좋다. 예상된 질문에, 예상된 답변에, 그리고 예상된 반응이다.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더 비틀거렸다. 아, 어지러워, 라는 말도 중간 중간에 빼먹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입고 나온 속옷이 걱정이 되었다. 뭘 입고 나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며칠 전에 선물 받은 속옷을 입고 나올 걸 그랬다. 이럴 때 꼭 엇나간다. 그러나 내가 뭘 입고 나왔는지 아는 데 걸린 시간은 방문을 열고 채 삼 분도 안 돼서이다. 다행히 브래지어와 팬티는 제 짝이 맞았다.

그 정신에도 바삭한 이불 느낌이 좋았다. 맨 살에 닿는 느낌이 찌릿해서 몸을 도르르 말았다. 그의 촉감은 더 찌릿했다. 그는 뽀얗고 예쁜 얼굴과는 반대로 생각보다 다리에 털이 많았다. 종아리의 털은 배꼽까지 까맣게 이어졌고, 그 털들이 자꾸 내 배를 간질였다. 그는 내 위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는 오랜만이다. 그러는 게 귀여워서 등을 스르륵 문질러 주었다. 동생보다 어린 남자 밑에서 뭘 하고 있는 건지, 피식 웃음이 났다. 모텔 방은 너무 밝았다. 나는 눈을 감고 정수리 위에서 느껴지는 그의 입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입김이 점점 더 뜨겁게 가팔라 올랐다. 그의 손은 더 거칠게 나를 더듬었다. 나도 그를 더 거칠게 몰아세웠다. 그는 두 번을 내뱉고 나서야 내 위에서 떨어졌다.

연락해도 되지, 그가 나지막하게 묻는다. 그가 휴대전화를 내게 넘긴다. 나는 내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기숙사 방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어제 그대로였다. 룸메이트는 아직 자고 있었다. 괜히 심술이 나서 그녀를 한번 흘겨보았다. 갈증이 났다. 늘 그랬던 것처럼,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먼저 찾으며 떠놓은 물을 마셨다. 휴대전화를 살짝 보니 아직 인영에게서 온 연락은 없다.

습관처럼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그러나 평소보다 내 손가락의 속도는 빨랐다. 설사약을 제안했던 친구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았다. 이 친구가 평소에 이렇게 인간관계가 좋았나, 친구가 오백 명이 넘게 있었다. 주인영을 찾으려 마우스 휠을 열심히 내렸다. 그러나 오백 여명의 친구 중에 주인영은 없었다. 혹시 내가 못 보고 지나쳤나 싶어 위로 올려가며 다시 보았지만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인영을 포기할 순 없었다. 술자리에 있었던 다른 남자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역시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오백 여명의 사진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가운데쯤에서 노란색 머리를 하고선 곧 군대를 간다고 했던 녀석을 찾았다. 맞다. 그 노란 친구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의 친구 목록을 훑어보았다. 드디어 찾았다. 주인영.

그의 페이스북은 거의 모든 부분이 친구에게만 공개해 놓은 상태였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인영이가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프로필 사진과 그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는 사진 몇 장, 간단한 기본 정보뿐이었다. 사진을 넘겨보았다. 사진이 별로 없어서 금방 다 볼 수 있었다. 여자와 함께 찍은 사진은 과 모임 때 단체로 찍은 몇 장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운동을 하며 찍은 사진이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 보드를 타는 모습, 축구를 하다가 다친 사진들이 거의 다였다. 나의 귀여운 인영은 보기와 다르게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의 무성한 다리털이 생각났다. 운동하고 있는 사진이 거의 전부라는 것은 아직 여자 친구가 없다는 소리다. 프로필 사진에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것 같은 여자 아이돌 가수의 사진도 있었다. 여자 연예인 사진을 올려놓은 것은, 나는 여자 친구가 없으니 이런 여자 있으면 소개나 시켜달라는 소리이다. 여자 친구는 역시 없는 거다. 그럼 끝이다. 페이스북을 껐다. 그리고 다시 켰다. 무언가 미련이 남아 계속 그의 공간을 맴돌았다. 애꿎은 프로필 사진만 자꾸 클릭을 했다. 먼저 친구 요청을 해볼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역시 그럴 수 없다.

아직 내 옷 속에 그의 체온이 남아있다. 코 밑으로 스멀스멀 그의 향기가 올라온다. 옷의 목 부분을 늘어 뜨려 코에 갖다 대고 깊게 들이마셨다. 그래도 한숨만 나온다.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돌렸다. 옅게 친 줄 밑에 노란 액체가 간당간당하게 닿지 못하고 있는 구찌 엔비가 보였다. 며칠 전부터 룸메이트에게서 내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향수에 옅은 금을 그어놓았다. 그런데 드디어 걸린 것이다. 확실해졌다. 내 룸메이트는 도둑년이다. 역시 도둑이 맞았다.

번뜩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당장 검색창에 ‘몰래 카메라’를 검색했다. 마우스 휠을 빠르게 내렸다. 휠이 내려가는 속도가 심장이 떨리는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몰래 카메라는 생각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디자인도 다양했다. 시계모양을 하고 있는 카메라도 있고, 펜으로 무장한 카메라도 있었다. 이럴 수가, 신세계다. 이렇게나 많은 몰래 카메라를 보자 조금이나마 있었던 내 죄의식은 씻은 듯이 날아가 버렸다. 나만 누군가를 몰래 지켜보겠다는 앙큼한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안심이 되었다.
어찌되었건 나는 그녀의 작은 몸집이 들어가기에 딱 알맞은 카메라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카메라가 내게 온 건 정확히 삼일 후였다.

2011년 6월 1일 AM 9:00

나에게 첫 임무가 주어졌다. 의뢰자 A가 자신의 룸메이트 B를 관찰하기를 요청했다.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B의 위에서 B를 보는 것이다.

 

   
▲ ⓒ일러스트 이호연 기자

 

AM 9시, A는 방을 나간다. B는 A가 나가자마자 바로 일어난다. B는 A의 서랍에서 속옷을 꺼낸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10시, 그 속옷을 입은 B가 머리를 닦으며 나온다. 그리고 전신 거울을 한참 쳐다보며 포즈를 취하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그리고 다시 속옷을 벗어 집어넣는다. 10시 반, 발가벗은 B는 A의 책상 위에 있는 화장품을 바른다. 그리고 A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발톱을 깎는다. PM 12시, B는 A의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1시, B는 책을 A의 책장에 꽂고 A의 옷장을 뒤진다. 스커트를 꺼낸다. 2시, 그 스커트를 입고 밖에 나간다. 4시, B가 들어온다. B는 스커트를 다시 A의 옷장 안에 넣는다. 5시, B는 A의 침대에서 잠든다. 9시, B는 일어나 A의 향수를 뿌리고 밖에 나간다. 10시, A가 들어온다.

2011년 6월 1일 PM 10:00

의뢰자 A가 들어온다. A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찾는다. A는 책장 맨 위에 있던 나를 조심스럽게 꺼내고는 내가 열심히 관찰한 B를 본다. A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A는 나를 쥐고 있지 않는 다른 손으로 자신의 버러진 입을 가린다. A는 대부분 나를 빨리 감기를 하며 보고, 가끔 원래 속도로 진지하게 B의 행동을 관찰한다. 영상이 다 끝나고 오랫동안 검은 화면이 멈춰있다. A는 나를 들고 한동안 멍하니 가만히 있다. A는 휴대전화를 켜 어디엔가 연락을 하려하는 듯 했으나 다시 끈다. 그리고 A는 다시 나를 켜고, 아까 보았던 B를 다시 본다. A는 시계를 보더니 나를 덮고 책장 위에 올려놓는다.

A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 사이 B가 들어온다. B는 A에게 들어왔다고 인사를 한다. A는 B에게 대답을 한다. A는 화장실에서 나와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곧이어 B도 그렇게 한다. A와 B는 서로 등을 지고 노트북을 킨다. A와 B는 아무 말도 없다. A는 노트북이 켜지자 페이스북에 접속을 한다. B도 곧이어 그렇게 한다. 12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A와 B는 잠들지 않는다. A와 B는 가끔 서로의 뒤통수를 쳐다본다. A는 거울을 보며 거울 속에 살짝 비친 B를 본다. B가 먼저 침대에 눕는다. B가 눈을 감자, A는 오랫동안 B를 쳐다본다. A도 곧 침대에 눕는다.

나는 페이스북 친구도 아닌 주제에 인영의 페이지에 매일같이 들어갔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그 날 이후 일주일 동안, 이렇게 해서야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인영은 친구들과 당구내기를 했고, 인영이 이겼다. 그래서 햄버거를 얻어먹었다. 그리고 햄버거 집에서 찍은 사진 두 장이 올라왔다. 여전히 뽀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눈웃음을 쳤다. 그러나 나는 그의 바지 속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무성한 다리털들을 안다. 그리고 그가 햄버거를 먹을 때 양배추를 빼놓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 번호를 줄 게 아니라, 그의 번호를 가져오는 거였다. 결국 먼저 연락을 한 것은 내 쪽이었다. 아쉬운 대로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했다. 일주일을 기다려서 연락을 했는데, 답장이 온 건 단 오 분만이었다. 답장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인영. 나 새미.

아, 새미누나!

응 그래, 잘 지냈어?

응응. 만나요. 보고 싶다.

언제,

오늘 괜찮아? 강남역 6번 출구 8시

좋아.

쉽다. 쉬운 것이었다. 한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도 내가 보고 싶다고 한다. 8시가 되기까지 5시간이 남았다. 그의 프로필 사진에 있는 여자 아이돌 가수를 한 번 더 클릭했다. 여자는 내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이왕이면 이런 느낌으로 나가는 게 인영의 마음에 더 들 것이다. 나는 누군지도 잘 모르는 이 낯선 아이의 얼굴을 빤히도 쳐다봤다. 미용실 가서 머리를 드라이 하고, 네일아트도 받으러 가야겠다. 메이크업은 오렌지 톤으로 해야겠다. 해야 할 일이 많다. 피아노 건반 위를 껑충껑충 뛰고 있는 것 같다.

건반을 껑충 뛰어 인영에게 갔다. 따뜻한 사케를 마실 수 있는 조용한 선술집이었다. 인영은 나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술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앞이라 조금 취한 척을 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대화는 없었다. 우린 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여백이 있는 동양화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인영은 흑백의 꽃이고, 인영과 나 사이엔 커다랗고 하얀 공간이 있고, 난 그 위에서 인영을 지켜보는 흑백의 새이다. 하얀 공간을 깨기 위해 술을 더 마셨다. 나는 페이스북에서 본 그의 정보를 최대한 활용했다. 겨울이 좋아. 보드 때문에, 인영아 너도 보드 타는 거 좋아해? 요즘 자전거 좋은 거 사려면 어느 정도하지? 캠퍼스가 너무 넓어서, 하나 장만하려고, 친구들이랑 몇 일전에 포켓볼 치러 갔는데, 져서 피자 샀잖아.

인영은 내 노력을 알아주었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면 또 살짝 눈웃음을 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공간은 채워지지 않았다. 머리가 조금씩 어질어질했다. 인영은 나를 부축해 근처 모텔로 갔다. 우리는 드디어 합일점을 찾은 것이다.

방은 어두웠다. 혹시 카메라가 있진 않을까 틈새가 있는 곳 마다 쳐다보았다. 정말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집중을 할 수가 없다. 분명히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발가벗은 채로 자판기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도저히 이 공간에 있을 수가 없다. 인영을 밀치고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인영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나가자, 못 하겠어, 도저히. 왜, 누나! 카메라가 있는 거 같아서. 에이 누나 그런 게 요즘 세상에 어디 있어요, 괜찮아 누나, 그렇게 가면 나 화나는데. 미안, 여기 카메라가 있어. 인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그래 그럼, 누나 나랑 하기 싫구나, 가자 그럼. 미안, 미안, 카메라 때문에, 카메라 때문이야.

2011년 6월 15일 AM 9:00

B를 관찰한지 15일째 되는 날이다. 나는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A는 명랑한 모닝콜과 함께 AM 7시쯤 일어난다. A는 씻고 나와 스킨을 바르더니, 돌연 잠겨 있는 첫 번째 서랍을 연다. 그리고 서랍장 안을 정리하고 살짝 열어둔다. A는 스킨을 다시 바르고,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까지 바르고 다시 서랍을 열쇠로 잠근다. 그리고 A는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아 다시 열쇠를 돌려 서랍을 연다. 서랍 안에 있는 돈을 주머니 속에 넣고 서랍을 살짝 열어둔 채, AM 8시 50분에 밖으로 나간다.

A가 나가자 B는 얼굴을 반쯤 덮고 있던 이불을 살짝 내리고 문 쪽을 빠끔히 쳐다본다. B가 일어나 A의 책상으로 간다. B는 A의 첫 번째 서랍을 조심스럽게 뒤진다. B는 통장을 꺼내 보더니 다시 넣는다. B는 서랍 안에 있는 A의 다이어리를 꺼내 읽는다. B는 이내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 곧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다가 문자를 한다. 멍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A의 다이어리를 보더니 이내 배를 잡고 웃는다. 9시 반, B는 A의 옷을 꺼내 입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휴대전화에 있는 사진을 컴퓨터로 옮긴다. 10시 반, B는 옷을 다 벗고 A의 노트북 앞에 앉는다. 화면에는 어떤 남자가 있다. B는 자신의 몸을 만진다. 화면의 남자도 자신의 몸을 만진다. 11시 반, B는 A의 시간표를 확인하고 A의 침대에서 잔다. PM 1시, A가 들어온다. B는 계속 알몸인 채로 A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 A는 한참 B를 쳐다보다가, 다시 나간다. 3시, B가 일어난다. A의 이불에 온 몸을 돌돌 말고, 냄새를 킁킁 맡는다. 4시, B는 A의 에센스를 머리에 바르고 나간다.

2011년 6월 15일 PM 10:00

A는 언제나처럼 들어오자마자 나를 찾는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A의 손길이 점점 더 급해지고 거칠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해서 보는 장면들이 많아졌다. A는 나를 다 보고나서, 자신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한 동안 가만히 있다. 그리고 킁킁하고 냄새를 맡는다. PM 11시, B가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A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B가 웃으면서 인사를 받는다. 그 후 둘은 아무 말이 없다.

A와 B는 서로를 등을 지고 컴퓨터를 한다. A는 코를 파고 코딱지를 책상 밑에 붙인다. B는 발가락 사이의 떼를 문질렀던 손으로 과자를 먹는다. A는 페이스북에 카페에서 활짝 웃고 찍은 사진을 올리고, B는 친구와 메시지를 보낸다. 우걱우걱, B의 과자 먹는 소리가 둘 사이를 메운다. A는 뒤돌아서 B가 먹고 있는 과자를 한번 쳐다보고 B의 뒤통수를 째려보았지만, B가 알 길은 없다. A가 다시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보자 이번엔 B가 뒤돌아 A를 본다. A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창에 ‘룸메 샹년, 과자를 뭐 저렇게 무식하게 처먹어.’를 쓰고 있다. B는 안경을 치켜세우고 A의 컴퓨터 화면을 보며 찡그린다. 그러나 A가 알 길은 없다.

AM 2시, B가 먼저 불을 끈다고 했고, A는 B가 불을 끄고 한참 뒤에야 잠이 든다.

카메라를 통해 그녀를 지켜본 지 보름이 지났다. 처음 느꼈던 당혹감과 경계심은 어느새 외줄을 조심스레 타고 있는 아슬아슬한 쾌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왜 화가 나지 않는 걸까. 나는 왜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나. 그것의 출처를 알 수 없다. 내 것의 일부를 보여준다는, 혹은 나의 전부를 누군가에게 무방비한 상태로 들킨다는 긴장감, 그리고 누군가를 몰래 지켜본다는 긴장감이 동시에 나를 감싸 안았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오직 내 안의 카메라만 이 진실을 알고,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는 평소에 열쇠로 잠가 뒀던 첫 번째 서랍장을 열어놓고 왔다. 충동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르는 이 긴장감에 휩싸여 온 몸이 전율했다. 서랍장에는 조금의 비상금과 적금 통장이 있다. 그리고 일기장과 헤어진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 커플링이 있다. 그녀가 본 내 서랍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어찌 되었든 아마 서랍은 당분간 열려 있을 것이다.

친구들은 그 도둑년 어떻게 되었냐며 일의 진행 상황을 자꾸 물어보았다. 내 머리 위에는 카메라가 없기에, 거짓말을 했다. 룸메이트가 스스로 반성을 했는지 요즘은 도벽이 좀 뜸하다고, 그러니 뭐 그리 큰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다. 카메라를 권했던 친구는 끝내 아쉬워했다. 그 년 그거, 맛 좀 봐야하는데. 야, 그거 구속할 수도 있는 거야, 라며 내 취미생활을 위협했다.

구속. 그래, 이제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겠다. 나는 그녀를 구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구속하는 취미생활을 가진 것이다. 나의 그녀는 내 물건을 쓰고, 나를 지켜보며 내 울타리 안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자유를 내가 정한 범위 안으로 묶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정된 그녀의 자유마저 내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구속자와 피구속자였던 것이다.

아 맞다, 너 며칠 전에 사케 집에서 주인영인가 하는 그 어린 얘랑 놀았지, 그런 건 또 어디서 알았는지 오지랖 넓은 내 친구들이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냥 친구랑 약속한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근처에 있는 인영과 술 한 잔 먹은 거라고 둘러댔다. 그래, 다행이네, 난 또, 걔 여자 있는 거 같더라고, 학관에서 여자랑 있는 거 자주 봤거든, 점심 같이 먹던 거 같던데, 너가 걔한테 관심 있어 했던 거 같아서, 조심하라 그럴라 했지, 나는 웃어 넘겼다. 그에게 여자는 없다. 지난 이십여 일 동안 그의 페이스북을 낱낱이 추적한 결과이다.

인영과 모텔에서 그렇게 헤어진 이후, 우린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인영의 페이스북에 매일같이 들어갔다. 그는 여전히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로 베시시 웃고 있었다. 인영은 내가 그의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는지, 자신의 상태를 친구에게 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이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드디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인영이가 ‘기숙사,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을 지나며, 홀연히 사라진 너를 생각한다.’ 라는 글을 쓴 것이다. 인영의 사라진 그녀가 어쩌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영이도 아직 그 날을 잊지 못한 것이다. 그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또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내 친구들이 틀렸다. 조심해야할 여자 따위는 없다. 그가 지금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나다.

 

   
▲ ⓒ일러스트 이호연 기자

 

다음 날에도 인영의 상태를 보기 위해 그의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또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구찌 엔비의 향기.’ …… 오, 하느님. 이건 정말 나에게 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엔비는 입학 이후부터 줄곧 써온 나만의 향수이다. 친구들이 냄새가 독하다고 욕해도 바득바득 우겨가며 지금까지 써온, 나를 상징하는 향수이다. 웃음이 나왔다. 인영이도 그 날의 나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오랜만에 연애 호르몬들이 나와 춤을 추며 세레나데를 불렀다. 조급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그에게 어떻게 다시 연락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밤새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었다. 인영이가 나를 좋아하는 것은 곧 사실로 들어났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드디어 인영으로부터 문자가 온 것이다. 역시 강남역 6번 출구 8시. 엔비를 뿌리고 나가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기숙사까지 인영과 함께 걸어와야겠다.

습관이라고 하면, 습관일 수도 있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룸메이트가 아직 자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없이 자고 있는 것이 확실하면 카메라를 켜놓고 나온다. 오늘도 역시 이 의식을 치르고 나왔다.

아침에 인영의 메시지를 받고, 일정이 갑자기 꼬이는 바람에 우왕좌왕하다가 조금 늦게 나왔다. 부랴부랴 교실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니 갑자기 내가 카메라를 잘 숨기고 나왔나 헛갈렸다. 설마 잘 숨기고 나왔겠지, 그런데 만약 그녀가 그 카메라를 본다면? 본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일이 나의 잘못인지 아니면 그녀의 잘못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까? 아니, 이것을 굳이 잘못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그녀가 만약 카메라를 본다면, 그녀의 알몸을 몰래 훔쳐보고 그녀의 변태적인 행위를 몰래 훔쳐본 것을, 나는 뉘우칠 수 있을까. 아니, 멈출 수 있을까. 아니, 이것을 굳이 멈춰야 하나?

복잡한 심경에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카메라는 알아서 잘 있다. 이렇게 스스로 합리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켜 인영의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그의 지금 상태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춰 준비를 해야 했다. 아직 특별히 글이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그는 열심히 친구들의 글에 댓글을 달아 놓았다. 나는 그가 댓글을 열심히 달았던 것보다 더 열심히 그들의 대화를 읽었다. 오늘 뭐하냐는 친구의 글에 그는 여자 친구를 만난다고 했다. 나이든 교수의 목소리만 나지막이 들리는 교실 안에서, 나도 모르게 허파로부터 올라오는 효과음을 내며 정적을 깼다. 교수를 비롯한 몇 명의 학생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웃음이 났다. 어느새 나는 그에게 여자 친구로 받아드려진 것이다.

2011년 6월 19일 PM 5시

오늘은 나의 임무에 조금 차질이 생겼다. B만 관찰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B가 처음 보는 사람을 방에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A, B와 다르게 머리가 짧고, 키도 컸다. 들어오자마자 B와 키가 큰 사람은 A의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그 사람은 B 위에 올라간다. 그 사람은 B의 옷을 벗긴다. 그리고 조금 후에 자신의 옷도 벗는다. 그는 다리에 털이 많은 사람이다. 종아리에서부터 배꼽까지 까만 털이 무성하다. 한 시간 동안 B와 그 사람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PM 6시, B가 나간다. B가 나간 동안 그 사람은 A의 책상을 이리저리 살핀다. 그리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B는 5분 후에 다시 들어와서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하고선, 그 사람들 데리고 나간다.

여덟시, 이 거리가 한창 바빠지기 시작할 시간이다. 거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사람들로 정신없이 붐볐다. 나는 그 속에서 그의 네 번째 모습을 만났다. 우린 또 동양화가 되어 밥만 먹었다. 오늘은 술도 먹지 않았다. 그는 요즘 과제 때문에 너무 바쁘고 피곤하다고 했다. 새로 산 속옷이 안에서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래도 그와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제와 알았지만, 그는 짝 쌍꺼풀이었다. 모니터 속의 그가 아니라, 실물인 그의 얼굴을 드디어 맨 정신으로 오랫동안 본 것이다. 그는 웃을 때 한 쪽 눈이 더 많이 찡긋거렸다. 그는 그렇게 한 쪽 눈을 계속 더 찡긋거리며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또 어떤 글이 올라올까,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이젠 먼저 친구 요청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방에 들어가기 전에 그쪽에서 먼저 친구 요청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방에는 불이 꺼져있다. 나는 어두운 방을 걸어 카메라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습관처럼 카메라를 보았다.

학교 여자 기숙사는 남자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그런데 내가 장님이 아니라면, 분명 이 카메라 안에는 남자가 있다. 아마 그녀는 경비 아저씨를 용케 빼돌리고 남자를 기어이 방에 들인 것이다. 얼핏 친구들한테 이런 경우도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적어도 여기까지는 아니다. 적어도 내 방, 그리고 내 침대 위는 더더욱 아니다. 내 취미생활이 결코 이 선을 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처럼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카메라를 힘줘 잡는 나를 느낀다. 카메라를 쥐고 있는 손의 힘이 뇌로 전달되어 머리를 요동친다. 진정이 되지 않는다. 촌스럽게 손도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카메라를 껐다. 그리고 낯선 남자의 액이 묻어 있을 지도 모르는 내 침대를 계속 쳐다봤다. 역겹다. 나는 역겨워야 한다. 그런데 나는 또, 카메라를 킨다.

아마 매일 밤 전화 통화를 하던 남자일 것이다. 언젠가 그녀는 그 남자와 1주년을 기념하고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온 적이 있다. 화면이 점점 현재로 다가올수록 매일 밤 전화기 넘어 목소리를 들었던 그 남자에게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남자가 모자를 벗는다.

믿을 수가 없다.

남자가 바지를 벗는다.

시커먼 털이 온 다리를 덮고 있다.

믿을 수가 없다. 믿고 싶지 않다.

그제야 룸메이트가 내 다이어리를 보고 어딘가에 문자를 하고, 배를 잡고 웃었던 것이 뇌리를 스쳤다. 얼굴이 화끈 거렸다. 카메라를 잡고 있을 힘이 더 이상 없었다. 카메라가 바닥에 부딪혀, 중력에 이끌리는 소리가 난다. 이어 나의 몸이 카메라를 따라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서랍을 열어 일기를 읽었다. 곧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와 종이 찢는 소리가 들린다.

어둠을 울리는 그 소리와 함께 불현 듯, 그의 프로필 사진에 있는 여자 아이돌 가수의 이름이 생각났다. 은서. 그것은 던져진 저 카메라 안에 있는 여자 이름과 같은 것이다. 이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는 장기 기억 속의 필요 없는 무언가가 꺼내져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나 보다.

고요함 속에서 남녀의 신음만이 고막을 진동하고, 그 뒤섞임 속에 내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바닥의 흔들림이 엉덩이뼈를 통해 온몸에 퍼져있는 모세혈관으로 전달된다. 이 요란은 내 페이스북 소식을 알리는 소리이다. 그 소식은 기다려왔던 주인영의 친구 요청이었다. 그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을 침대를 향해 힘껏 힘을 실어 전화기를 던졌다. 그러나 버려진 카메라는 여전히 사실을 말하고 있었고, 덩달아 나의 진실은 이 방의 어둠보다 더 깊숙한 곳으로 떠나갔다.

이가영(국문4)  kkp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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