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시사 일반
희생없는 기적은 없다, 영화 <밍크코트>
남기인 기자 | 승인 2012.03.01 21:23

영화 토론면을 처음 기획하면서 학우들과 어디서, 어떤 영화를 보면 좋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떠올랐던 곳이 KU씨네마테크였다. KU씨네마테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여러 가지 독립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이다. 영화 토론면의 처음 시작은 웰메이드 독립영화로 평가받는 ‘밍크코트’로 선정했다. 주요 내용이 대학생으로서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인만큼 영화 토론을 통해 밍크코트라는 영화 속 현실을 학우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토론참여자: 문준호(문과대ㆍ국문4), 황지애(문과대ㆍ문콘3)

밍크코트의 줄거리

   

순수기독교인 가족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단을 믿는 주인공 현순. 그녀는 우유배달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고 있지만 큰언니인 명순, 남동생 준호와 그의 부인으로부터 늘 은근히 무시당한다. 어느 날 현순의 어머니가 쓰러지며 뇌사상태에 빠지고 가족들은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살아날 가능성이 1%미만이다”라는 말을 들은 가족들은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려 하지만 현순만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믿는 이단 종교의 전도사로부터 “어머니가 반드시 살아날 것이다”라는 신의 계시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형제들은 임산부인 현순의 딸 수진을 설득하여 현순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그 사이 연명치료를 중단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수진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의 뜻에 따르려 하지만 할머니의 밍크코트를 계기로 생각을 바꾸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호흡기 제거를 막는다. 삼촌과 이모의 격렬한 질타에도 현순의 편을 들며 꿋꿋이 맞서는 수진. 하지만 너무 흥분해서였는지 수진은 갑자기 쓰러져 수술실로 옮겨진다. 수진이 수술하는 사이 수진의 할머니는 기적처럼 맥박이 돌아온다. 그것을 본 명순은 현순에게 미안해하며 “어머니가 오늘밤을 넘기면 연명치료를 중단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보자”고 생각을 바꾼다. 한편 수진의 수술 중 피가 모자라는 위급상황이 닥치지만 명순과 준호 그의 부인까지 수진과 혈액형이 달라 수혈을 할 수 없다. 유일하게 혈액형이 같은 사람은 간신히 호흡하고 있는 수진의 할머니 뿐. 하지만 병원에서는 “할머니는 수혈을 하면 죽게 된다”고 말한다. 여태까지 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에 반대했던 현순은 할머니의 피를 수진에게 주자고 형제들을 설득한다.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엄마를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현순은 괴로워하며 그동안 형제들을 미워했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기도한다. 결국 형제들도 현순의 뜻에 동의해주고 할머니의 피를 수혈 받은 수진은 살아나게 된다.

사회자: 밍크코트라는 제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준호:
저는 밍크코트라는 제목보다 예수병원이라는 뜻의 영어 제목인 ‘Jesus Hospital’이 더 와닿았는데요. 영어 제목대로였다면 가족들은 그 병원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신의 윤리, 죄에 대한 이야기로 더 깊게 나갈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영화 속에서 할머니가 현순에게 주기도 했던 밍크코트는 가족애를 상징하는 유일한 소재잖아요.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의미가 더 특별하니까 가족애를 부각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밍크코트라는 제목을 쓴 것 같아요.
황지애: 가족애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밍크코트는 현순의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소재라고 생각해요. 밍크코트를 받았다는 것은 즉 엄마의 사랑을 받았다는 뜻인데, 딸 수진이 돈을 달라고 했을 때 현순은 그걸 바로 팔아버렸단 말이에요. 분명 자식으로서 부모를 사랑하긴 했지만 그 마음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사회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나요?

   
토론에 참여한 문준호 학우

문준호: 영화 막바지에서 철벽같던 현순이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장면이요. “형제들이 너무 미웠다. 그래서 이렇게 고집을 부렸던 거다”라고 고백한 순간 하늘에서 눈이 내리잖아요. 현순의 마음이 치유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면인거죠.
황지애: 저도 같은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영화를 보면 현순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현순을 이단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몇 장 몇 절을 읽어라” 라는 응답을 받는 장면을 봤을 때 부터에요. 사실상 그런 상세한 응답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현순이 마지막에 형제들을 미워했던 마음을 뉘우친 그 순간 눈이 내렸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죠.
문준호: 형제들과 미묘하게 갈등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 이게 진짜 현대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요?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따뜻한 가족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명절에 대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 서로 따뜻한 말만 나누지는 않잖아요. 영화에서는 가족 간에 묘하게 긴장감이 조성되는 모습을 잘 연출한거죠. 그런 장면들도 공감이 가더라구요.

사회자: 영화에서 종교, 삶과 죽음을 비롯한 여러 가지 주제의식을 다뤘는데 가장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토론에 참여한 황지애 학우
문준호: ‘죄’에 대해 중점 있게 다룬 것 같아요. 영화 내내 주인공 현순이 가장 많이 하는말이 “죄 짓지 말라! 회개해!” 라는 말이잖아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이 가족 중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을 꼽자면 오히려 현순이에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영화를 통해 종교에서 강조하는 죄의 의미가 어떤 건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황지애: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던지는 게 바로 이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주인공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사람을 존엄사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과연 어떤 것이 옳은가?” 고민하는데,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다 그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에요.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신념에 대한 자기 확신의 문제는 20대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정립해나가는 시기니까요. 사실 이 영화에서의 내용은 20대가 경험으로 공감하기는 극히 희박하기는 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봐야 하지 않을까요? 10년 후에나 겪을까 말까한 일들을 영화를 통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죠.
문준호: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의식도 중요하게 그려졌어요. 주인공들이 갈등을 빚는 원인은 결국 돈 때문이잖아요. 처음에 병원 원장실에서 존엄사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장면에서 자세히 보면, 원장 자신의 것은 받침대까지 있는 고급스러운 찻잔이지만 나머지 가족들에겐 종이컵을 갖다주죠. 그 장면 자체가 돈 있는 사람에게는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것도 쉽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과정이 힘들고, 어렵게만 느껴지고 돈을 빼돌리는 등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는 걸 보여줘요.

사회자: 마지막으로 영화의 총평을 들어볼게요.
문준호:
가족, 종교, 죽음, 병원권력 등 가족의 이야기로 그 무거운 주제들을 한꺼번에 엮어낸 점이 훌륭했어요.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각 인물들을 더 깊이 있게 그려낸 감독의 소신 있는 구성도 좋았어요.
황지애: 기독교인으로서 외면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들을 소름 돋게 잘 표현했어요.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감독의 실제 경험담을 극화 한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리얼리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점이 이 영화의 묘미라고 할 수 있죠.
문준호: 등장인물들이 심한 갈등을 빚고 서로 대립하지만 이해 못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 바로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는 증거에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바로 현순의 외모죠! 얼굴만 봐도 ‘아.......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웃음) 이번 영화를 통해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했어요.

 

 

남기인 기자  kissess77@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기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건국대학교 건대신문사
05029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120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5층 건대신문사
대표전화 : 02-450-3913  |  팩스 : 02-457-3963  |  창간년월일: 1955년 7월 16일  |  센터장 : 김동규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동규
Copyright © 2019 건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