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 아닌 단순 심의 방식의 맹점 드러나

2011년 도입된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는 2010년 12월 제정된 등심위 관련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등심위는 그 전까지 사립대학의 등록금 책정에 있어 학교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 등록금의 민주적 산정을 위해 생겨난 기구다.

그러나 지난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학생위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등심위 진행의 민주성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말 △등심위 위원 중 학생위원 비중 30% 이상 △학생위원이 학교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자료제출권 △학교 홈페이지에 등심위 회의록 의무 공개 등의 법률을 새로 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 2012년도 등심위에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올해로 2년째를 맞이한 등심위, 이대로 괜찮을까? 이번 <건대신문> 대학기획에서는 등심위의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등심위 의무 설치 법령과 그 외 민주적인 조항도 마련됐지만, 정작 등심위에 참여했던 학생위원들은 등심위를 ‘유명무실’하다고 평했다. 학생위원들은 등심위에 대해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등심위는 단순히 등록금 책정을 심의하는 기구란 맹점이 드러났다.

이번 우리대학 등심위에 학생위원으로 참가한 이해찬(경영ㆍ경영정보3) 비상대책위원장과 문과대 이수정(문과대ㆍ국문3) 회장은 이번 우리대학 등심위에 점수(10점 만점)를 매기자면 ‘3점’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른 이유로 이 위원장은 “기본적인 구색을 갖추려고 했지만 학교 측은 진심으로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얻어낸 성과가 하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비민주적 등심위 진행, 학우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점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학교가 구체적인 산출근거나 자료 없이 주변대학들과 맞추기식 등록금 책정을 하고 있다”며 “충분히 깊이 있는 논의가 안 되고 등심위를 단지 인하율 결정을 위한 합의 자리로 보는 것이 문제다”고 꼬집었다.

협상력 부족 vs 설득력 부족

등심위 진행 중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울대 학생위원들은 회의 보이콧 선언을 했었으며 국민대는 서명을 거부했다. 우리대학의 경우 ‘등록금 대폭 인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화여대 정나위 총학생회장은 “등심위 사전협의에서 학생들이 학교측에 요구한 △학교 및 학생위원 동수 구성 △등심위 의결권 부여 △학생위원의 외부위원 선임 △공개회의 등 4개 항목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아 참석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등심위 회의록에 따르면 학교측은 학생들의 요구에 “△6대 6의 동수 구성(전문가 1명 비포함) △의결권은 학교장의 권한이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고등교육법에 어긋남 △외부위원 선임권은 학교장의 권한 △효율적 진행을 위한 비공개회의”로 답변했다. 이후 이화여대 등심위는 학생위원 6명이 빠진 채, 교직원과 전문가 1명을 포함한 7명으로 진행됐다.

교과부 대학장학과 관계자는 “얼마나, 어떻게 낮출 수 있을 것인지 방안도 없이 무작정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며 “학생들은 ‘자료제출권’을 활용해 법률 회계사에 의뢰도 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대학 학생복지처 한진수 처장은 “학교는 등록금을 책정할 때 금년만 바라보고 책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 학생들은 현재만 바라보고 자신이 낸 등록금은 전적으로 자신한테만 써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며 “학교운영은 그렇게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임 연구원은 “합의가 안되면 학생위원들이 명확히 입장표명을 하는 것이 맞다”며 “학생위원은 개인이 아닌 학생들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 많던 회의록은 어디로 갔을까

회의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대학도 있다. 한양대 관계자는 “내부 자료실에만 공개돼 외부인은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한양대 서상진 학생위원은 “서명까지 했지만 회의록 공개가 되지 않아 학우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며 “도대체 학교가 무슨 생각으로 공개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국민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민대는 지금까지 6회에 걸쳐 등심위 회의를 했으나 1차 회의록만 공개된 상황이며 그나마도 학생위원들에게만 공개돼 현재 학교 홈페이지가 아닌 학내 커뮤니티에 게시된 상황이다. 회의록 공개를 하더라도 회의록의 내용이 부실한 곳도 많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경우 매 회의록이 한 페이지로 공개될 정도다. 고려대 박종찬 총학생회장은 “내부 합의로 속기록은 비공개, 회의록은 공개하기로 결정했지만 회의록 내용은 너무 부실했다”고 평했다.

촉박하거나 혹은 부실하거나

등심위 자료요청과 관련한 불만도 있었다. 서상진 위원은 “자료를 요청하면 등심위 회의 바로 전날에 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간이 없어 자료 분석도 힘들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우리대학 등심위와 국민대 등심위 또한 지난 회의에서 요청한 자료를 미리 받지 못하고 다음 회의석상에서 수령해 문제가 있었다. 우리대학 이 비대위원장은 “자료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전달됐다고 하는데 받지 못하기도 했다”며 “기본적으로 나와야 될 자료가 빈약하고 준비도 미흡했다”고 전했다. 등심위 의결기구화 법안을 발의했던 조영택 의원은 “현재 등록금 심의의원회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예”라며 “위법 사항에 대한 법조항이 미흡해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에 교과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것은 학칙으로 정하게 돼있다”며 “세세한 법조항은 각각의 학교의 자율성을 제한할뿐더러 거시적으로 볼 때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일축했다. 덧붙여 “이것이 초중등 교육과의 차이점”이라 전했다.

눈 가리고 아웅, 허울뿐인 등심위

등록금 인하 후 △수업일수 감축 △강의 수 감소 △장학금 삭감 △비정규직 강사해고 등의 꼼수를 부리는 일부 사례도 있다. 우리대학 이해찬 비대위원장은 “등록금 낮추는 대신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학교가 꾀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며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의사를 전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제11조 3항에는 ‘각 학교의 장과 설립자는 등심위의 심의결과를 최대한 존중해야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학생위원들 대다수는 “학교 측에서 등심위는 등록금 책정을 심의하는 곳이지 의결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했다”며 “본래 취지와 현실은 매우 동떨어졌다”고 비판했다. 서상진 학생위원은 “법 조항 자체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많고 어긴다하더라도 구체적인 처벌 조항이 없다”며 “대학이 등심위를 요식절차로만 치부하는 듯하다”고 불평했다.

등심위에 참여했던 문과대 이수정 회장은 “학교는 등록금과 학생 교육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학생들이 돈만 내는 ATM기계도 아니고 이대로라면 학교와 학생들은 끊임없이 평행선을 달릴 것”이라고 평했다. 또 이 비대위원장은 “공부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은 학교가 만들어줘야 한다”며 “순수하게 학생 힘으로는 현실적으로 어려울뿐더러 물질적인 능력도 부족하다”고 전했다. 

한편, 학생복지처 한 처장은 “어려운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피부에 닿게 큰 폭을 인하해 달라는 것은 이해한다”고 전했다. 이어 “15%를 인하하면 200억에 가까운 돈인데 학생위원들은 ‘어디서 예산조절을 해야한다’ 하는 의견도 없다”며 “무작정 ‘학교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무책임한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교과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임 연구원은 “교과부는 학교별 등심위 규정을 모두 수집해 그 안에 위법사항은 없는지, 등심위 취지에 어긋나게 운영되는 조항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권영길 의원은 “정부가 사립대학의 운영 전반에 개입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이 80%, 사립대학 비중이 80%에 달하기에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민주적 운영을 강조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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