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소설 좀 추천해 주세요.”

국어국문학과를 다니면서 소설을 쓰다보면 주변 지인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된다. 이럴 때면 나는 늘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어떤 소설을 추천해주어야 하는지 기준이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가 문체가 가벼운 일본 소설이나, 스토리가 탄탄한 서구식 장르 소설 등을 많이 추천한다. 하지만 정작 이런 재미 위주의 소설을 계속 추천 할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고는 한다. 정말 이 소설들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작은 의문들이 하나씩 점점 커져서 결국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깊이 있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였고 그 이후에 나는 지인들에게 다시 읽을 만한 소설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편혜영’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추천해주었다. 공지영이나 이외수처럼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작가는 아니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이 작가의 소설은 매우 비범하다. 소설가 편혜영의 작품을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그로테스크’다. 편혜영의 첫 장편 소설 ‘재와 빨강’은 쓰레기더미로 가득한 C국과 신종 전염병에 걸린 주인공을 앞세워 사회 밑바닥의 구정물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다른 단편 소설집 ‘아이오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역시 평범하지 않은 소재들과 섬뜩한 표현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실세계와 분리된 4차원적인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사건들과 적나라한 이미지들은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 현실사회의 단면을 파고드는 냉정한 작가의 시선이 내포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개 짖는 소리를 따라 사육장 쪽으로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나, 근조화환을 주기 위해 누군가가 죽기를 기다리는 주인공, 명품 가방에 짓눌러 죽어버린 시궁쥐에 대한 모사 등은 편혜영이라는 작가가 지향하는 평범치 않은 세계를 보여주는 표현법이다.

편혜영의 소설을 읽고 나면 마치 고급스러우면서도 잔혹한 유럽풍 예술 영화를 보고난 기분이 든다. 보통 현대한국문학은 지루하기만 하고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편견이 강하다. 편혜영은 이런 현대한국문학의 선입견을 단번에 깨트릴 만큼 강렬한 이미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단순히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뜨겁고, 기묘한, 미지의 그로테스크한 세계와 만나고 싶다면 나는 과감히 편혜영의 소설을 읽어보라 하고 싶다. 분명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시리즈 진행 순서

1. 편혜영_재와 빨강

2. 김애란_두근두근 내 인생

3. 손홍규_이슬람 정육점

4. 박민규_지구영웅전설

5. 김중혁_펭귄뉴스

6. 천명관_고령화 가족

7. 정한아_달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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