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누군가에겐 처음 사봤던 립스틱 색깔일 수 있고, ‘사랑’과 함께 떠오르는 설레는 색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핑크’에서 핑크는 단순한 색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핑크‘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공간이며, 삶에서 다신 이룰 수 없는 꿈같은 시절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실, 영화 ‘핑크’는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하지만 흥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생각보다 가까이 있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핑크’의 줄거리
군산항에 자리 잡은 선술집 '핑크'를 찾아온 수진은 주인 옥련을 만나며, 둘은 함께 일하기로 한다. 옥련과 그녀의 아들 상국이 10년 넘게 지켜온 '핑크'는 동네 사람 모두의 안식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철거 위기에 내몰리게 되고 옥련은 철거 반대 시위에 참여한다. 시위로 인해 옥련이 제대로 돌보지 못하자,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아들 상국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어릴 적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는 수진은 무덤덤한 듯 해도 그런 상국을 보듬어주며 옥련의 빈자리를 채워나간다. 매번 무표정한 그들의 심정은 알 수 없지만 핑크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방랑자의 노래를 통해 어렴풋이 그 심리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마을의 철거 위기 속에서도 핑크는 소외된 이웃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공간이 되며 수진은 핑크의 새 주인이 된다. 옥련과 상국의 행방은 묘연해졌지만 핑크 간판에 핑크빛 네온사인이 켜지며 영화는 끝난다.


토론참여자: 문준호(문과대ㆍ사학3), 허지수(경영대ㆍ경영정보4)

사회자: 생각보다 어려운 영화였던 것 같은데요. 총평이 궁금해요.
허:
전체적으로 느린 분위기의 영화였어요. 지루하지는 않지만, 사건 진행이 느리더라고요. 이야기 구성은 좋았어요. 감독이 표현한 영화 주제가 고독이던데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 설정이 인상적이었어요. 주인공이 왜 갑자기 핑크에 오게 되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아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보게 되더라구요.

문: 네, 충분히 있을 법한 캐릭터에요. 선술집 주인, 어쩌다 그 곳에 오게 된 여자, 방랑자 기타리스트, 정신지체아 등. 오히려 무척 현실적인데 캐릭터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보니 영화가 리얼리티를 상실한 것 같아요. 방랑자가 느닷없이 핑크에 기타를 맡기고 가는데도, 수진은 가만히 있잖아요. 일반사람 같았으면 “저기요~ 이거 찾아가세요~”라든지 “아니, 저 사람 뭐야?” 이런 반응을 보여야 할 텐데 말이죠. 감독이 너무 설명을 안하려다보니 이해가 어렵고 난해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사회자: 보면서 특별히 더 아쉬웠던 점이 있었나요?
▲ 허지수 학우가 영화 '핑크'의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호연 기자
허:
불필요했던 포르노그라피 장면이 의문이에요. 이해가 되는 장면도 있었지만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장면들이 많았거든요.

문: 네, 저도 비슷한 의견이에요. 등장인물이 나오는 공간들이 깨끗하다기보단 대체적으로 더럽고 을씨년스럽다고 할 수 있잖아요. 온통 회색빛 배경에 철거하다 만 건물이라든지. 또 거기서 등장인물들끼리 성행위, 배변 등 본능적인 행위들을 많이 한단 말이죠.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포르노그라피를 차라리 아주 세게 넣거나 아예 넣지 말았어야 한다고 봐요. 중심을 못 잡다보니 어중간하게 돼버렸다고나 할까요? 외설적이라 하기도,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정도요. ‘포르노그라피가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자: 영화가 무척 열린 결말로 끝났는데요. 각자가 생각하는 결말은 무엇인가요?
: 핑크라는 공간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다시는 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아 꼭 죽음은 아닐지라도 두 사람은 다시 핑크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고 생각해요.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이 세계에서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거죠. 수진은 핑크의 새 주인이 됐지만 옥련과는 다른 삶을 살 것 같아요. 마지막에 핑크 간판에 불이 켜졌듯이 이전보다 희망적인 삶을 살 거에요.

허: 그렇게 희망적이진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작은 변화나 발전이 있었지만 한 번에 확 나아질 수는 없겠죠. 원래 살아왔던 그대로 살아갈 듯해요. 인터넷에서는 결말도 난해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던데 우리 선에서 이해 못하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이 감독과 코드가 맞는다거나, 정말 너무나 이 상황이 뼈저리게 잘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또 다를지도 모르잖아요. 개인마다 무척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사회자: 영화에서 중요하게 말하려던 주제는 뭐였을까요?
▲ 이야기를 하고 있는 문준호 학우 ⓒ 이호연 기자
문:
주제는 ‘인생의 핑크빛을 찾아야한다’ 인 것 같아요. ‘핑크’라는 선술집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쉬고 비를 피하는 곳이잖아요. 핑크빛 간판의 네온사인이 항상 꺼져 있다가 마지막에서 켜지듯 결국 이 암울한 잿빛 인생 속에서도 핑크빛이 있으니, 그걸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거죠.

허: 주인공 수진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데요. 우리 모두에게 지금 당장 해결점이 없어도 언젠가는 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중간에 방랑자가 불렀던 노래도 그런 분위기잖아요. ‘결국엔 다 잘 될거야~’ 하는 느낌이요. 물론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이 겪었던 시련들도 결국엔 다 잘될 것이라는 답을 준다고 봐요. 다 지나고 보면 별 게 아니라는 거죠.

문: 상국이라는 캐릭터의 결말로 ‘너무 이상적인 꿈만 추구하다보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다’는 점도 영화에서 말하고 있어요. 감독의 삶의 경험이 묻어나지 않았나 싶네요.

: 상국이란 캐릭터의 결말이 너무 슬퍼서 아쉬운데요, 그렇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상국이라는 캐릭터가 지체아라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너무 감정에 솔직하게 살잖아요. 몸은 컸는데도 엄마 젖을 탐하는 등 본능에 충실하죠.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본능을 어느 정도 억제하고 자제하며 살고 있어요. 상국의 결말이 안 좋았단 것은 너무 본능만을 좇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죠. 전체적으로 사회화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두운 결말일 수 밖에 없다?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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