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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음(無用)의 쓸모(有用)에 대하여
문현선 | 승인 2012.03.26 06:49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둘레가 백 아름도 넘고 높이는 산만했다. 가지 하나로도 배를 만들 만한데, 그런 것이 수십 개나 되었다. 그런데 어떤 목수가 나무를 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제자가 급히 쫓아가 물었다. “스승님, 저 큰 나무를 어찌 그냥 지나치십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아서라, 몹쓸 나무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짜면 썩고 그릇을 만들면 망가지고 기둥을 세우면 좀이 슨다. 도무지 쓸모가 없으니 저리 오래 살아남은 것이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역설하는 《장자(莊子)》의 우언(寓言)이다.

세상은 실용적인 것과 효율이 높은 것을 중시한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자본주의가 세계화될수록, ‘최소 희생, 최대 효과’라는 경제 원칙은 점점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성의 보루라는 대학 또한 예외는 아니다. 입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입학 후에도 학생들은 상대평가와 취업준비의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더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더 빨리 좋은 스펙을 쌓는 데 열중한다.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믿는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들은 무시되거나 망각되기 일쑤다.

사실 대학은 경제 원칙을 위배하는 교육 기관이다. 상당히 긴 시간과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만, 대학이 제공하는 최고의 성과라야 A학점과 졸업장이다. 수료나 졸업과 동시에 면허가 주어지는 교육 기관들과 비교하자면 실용과 효율은 미약하다. 학점과 졸업장은 물론 입사 기회를 제공하지만 결과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좋은 직장을 잡는다 해도 평생의 행복을 약속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학은 생산성을 우선하는 사회의 다른 영역이 허용하지 않는 일들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나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 ‘쓸모없는 일’들을 하는 것이다. 대학은 목적에 대한 ‘유용성’ 없이 ‘뭐라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보장한다.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알고 싶어서, 그저 하고 싶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다. 다른 것을 하고 싶지 않아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원해서, 다만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때까지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그것이 대학생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깨닫는 것,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문현선  kkp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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