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 때 제일 받기 싫은 선물은 사탕? 얼마 전에 있었던 화이트데이 무렵 읽었던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화이트데이 때 최악의 선물로 ‘실속도 없고 비싸기만 한 사탕바구니’를 꼽았다고 한다. 그 외 최악의 선물로는 사이즈도 맞지 않는 민망한 속옷, 처치 곤란한 꽃다발, 정성만 가득 담긴 편지 등이 있었다. 기자의 주변 사람들도 원치 않았던 기념일 선물로 곤란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자는 이런 식으로 위로하곤 했다. ‘아무렴 나만 하겠니?’

기자의 연애사에서 ‘파커펜남’은 단연 최악의 남자 어워드 일등 수상감이다. 소개팅에서 만난 그는 육군사관학교 학생으로서 자유롭지 않은 신분이라 연애하기에도 제약이 많았다. 일주일에 딱 두 번, 주말에 만나 데이트하는 게 전부였고 그나마도 학교 일이나 선배에 치여 꼬박꼬박 만나기도 어려웠다. 자주 못 만나는 만큼 연락이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워낙 빡센 사정도 사정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심했던 그의 성격탓이기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당시엔 기자의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었었다. 하루 종일 머리 위에서는 말풍선이 두둥실 그려지며 그의 걱정뿐이었다. 가끔 택배로 깜짝 선물을 보내기도 했고, 금쪽같은 주말이 되면 마음 같아선 꼭두새벽부터 보고 싶었지만 항상 잠이 부족한 그를 위해 오후 늦게 만나주는 배려는 기본이었다. 정말 이때만큼은 그의 친구들로부터 ‘니 여친 좀 짱이다’하는 말도 들었을 정도였다.


10월쯤 연애를 시작했으니 처음 맞는 기념일은 크리스마스였다. 기자는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두고부터 부풀은 마음이었고, 선물로 목도리를 직접 떠주기로 했다. 저주받은 손을 타고난 기자는 손재주와 인연이 없던 터라 중간에 꼬여서 풀었다 다시 뜨기를 몇 번씩 반복하고 나서 목도리를 완성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당일 날! 밤잠을 설쳐가며 정성스럽게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의 답례는 바로....... 파커사의 볼펜이었다. “오 지져스! 정녕 이것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요리조리 뜯어봐도 그저 볼펜이었다. 급 써준 듯 한 편지에는 취재할 때 유용하게 쓰라고 산 선물이라 적혀있었다. 안타깝게도 취재 중에는 그런 뚱뚱하고 무거운 파커펜 따위는 쓸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 후로 그와는 삐걱삐걱 거리다 결국 헤어지게 됐다. 파커펜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 성격 차이일뿐^^;

그 흔한 귀걸이 한 짝 사줄 줄 몰랐던 파커펜남이 지금은 어떤 선물로 여친의 복장을 터뜨릴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여자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삐까뻔쩍한 선물만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의 고민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뭘 받으면 행복해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선물은 마음이라지만 그래도 파커펜은 좀 심했단 생각이 든다. 지금 그 파커펜은 어떻게 됐냐고? 기자의 어머님께서 잘 쓰시다가 쿨하게 버렸다는 말씀. 부디 다시 만나지 않길 바라며 파커펜도 안녕, 파커펜남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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