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말을 잘해주는 취재원을 만나면 가끔 생각지 못했던 멘트까지 얻게 돼 신이 나는 반면,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취재원을 만나면 그만큼 질문을 하는 기자가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말하는 것 못지않게 ‘듣는 것’ 역시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 MC로 꼽히는 유재석의 성공 요인을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기사도 있지 않던가.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잠깐 집중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 취재원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준다 한들 듣는 기자가 놓쳐버리면 말짱 헛일인 것이다. 그런 인터뷰는 기사를 쓸 때도 참 힘이 든다. 누군가의 말을 대화가 시작해서 끝나는 때까지 온전히 집중하며 듣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도 느끼게 됐다. 기자로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3년차인 요즘도 인터뷰는 참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다시 짚어보기에도 너무 뻔한 얘기지만, 내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만 아니라 누군가의 말 역시 잘 듣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야말로 ‘소통’을 잘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한 만큼 서로 달라 부딪히기 쉽다. 공연을 좋아하는 기자가 자주 가는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만 봐도 그렇다. 하루에 한 번씩 작은 글 하나, 댓글 하나가 논란이 된다. 얼마 전에도 화제가 되는 공연에 캐스팅 된 배우가 그 배역에 어울리는지를 가지고 시비가 붙었다. 자신이 맘에 드는 대로 생각하면 될 텐데 굳이 피곤하게 달려드는 모습이 언뜻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이에 쉽게 휩쓸려 버리곤 한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펼칠 수 있는 내 의견’이라는 말로 정당화 하지만 자신의 말이 더 옳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그것은 의견이 아닌 ‘고집’이 되기 쉽다.

누군가 내뱉은 사소한 말 하나로 정작 무엇이 핵심이었는지도 잊어버린 채 쓸데없는 말만 난무하는 말싸움이 돼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곤 한다. 각자의 의견만 목청껏 소리 지르는 모습에 기분이 씁쓸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우리에게 진정한 소통이 부족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토요일, 학생회관 뒤쪽을 지나다 개나리가 핀 것을 봤다. 올해 처음 보는 꽃이라며 좋아하던 순간 하늘에서는 참 어울리지 않게도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었다. 3월이면 봄이 시작될 시기가 맞는데도 그날 개나리는 때를 잘못 맞춰 나온 듯 추워보였다. 소통은 없고 각자의 목소리만 입김처럼 퍼지고 있는 지금과 같이 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이 왔으나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이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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