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상이 있는 중앙 정원의 목련이 일제히 흰 망울을 터트렸다. 4, 5층 높이의 목련 대여섯 그루가 흰 꽃망울을 주렁주렁 달고 행정관을 배경으로 열병하듯 늘어선 모습은 마치 흰 드레스를 입은 숙녀들이 미소를 머금고 예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듯하다. 바야흐로 캠퍼스는 지금 꽃망울들이 일제히 합창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일감호 주변의 개나리는 이미 샛노란 물결을 선이기 시작했고 벚꽃도 곧 화려한 군무를 펼칠 참이다. 캠퍼스의 수많은 나무들에도 이제 신록이 일제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대학 캠퍼스는 꽃망울과 신록이 생명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밤은 더 아름답다. 가로등 조명 속에서 꽃들은 수줍어하고 일감호와 박물관 그리고 KUL하우스의 야경은 낭만과 신비로움을 연출한다. 밤에 같이 산책한 지인은 건국대 캠퍼스가 이처럼 아름다울 줄을 미처 몰랐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의 밀도는 달라질 수 있다. 평범한 한 송이의 꽃이나 갓 돋아나오는 새싹을 보고도 깊은 감동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별다른 감흥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삶을 나름대로 보람차고 만족스럽게 보내지만 매일의 삶을 무의미하고 건조하게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새싹의 아름다움이든 삶의 아름다움이든 그것을 가장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아마도 땀일 것이다. 들판에서 그냥 돋아나는 새싹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농부가 땀 흘려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린 뒤 돋아나는 싹을 보는 감동에 비길 것은 아닐 것이다. 맥주 한잔의 맛도 하루 종일 빈둥빈둥 논 사람과 열심히 일을 해서 몸과 마음이 적당히 지쳐있는 사람이 느끼는 맛이 같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봄 우리는 캠퍼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제대로 느낄 만큼 땀 흘리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볼 일이다.

자신이 학생이든 혹은 교직원이든 건국대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우리가 이 봄에 우리 캠퍼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하는 방법은 하루하루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은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교직원들은 열과 성을 다해 맡은 일을 해나가는 것이 될 터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책무는 뒷전이고 끝임 없이 남을 헐뜯고 비판하고 반대하는 일에만 매진하는 듯한 사람들도 없지는 않는 듯하다. 물론 비판은 사회와 공동체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문제는 그 목적과 배경이다.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과 공익을 위한 비판과 반대가 아니라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반대와 비판은 자신과 공동체를 황폐화시키기 마련이다.

비판을 당하는 쪽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비판에 대해 진지한 고려와 자기성찰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해버린다면 이 역시 합당한 태도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옛 사람들이 가르친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교훈은 오늘날의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덕목일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은 더욱 그렇다.
오늘은 미래의 과거다. 그리고 미래는 오직 과거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 우리 모두는 자신과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가. 땀 흘려 황무지를 개척하고 씨앗을 뿌리기보다는 나무그늘 아래서 세상 험담하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자성은 없고 남 탓만 하고 남에 대한 비난만 하면서 보내기는 이 봄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