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라는 참 특이한 작가가 있다. 작가 프로필 사진을 보면 얼굴의 절반은 선글라스로 가리고 있고, 시상식에서는 느닷없이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생각했는데 소설을 보니 이 또한 작가만큼 희한하다. SF 소설인가 했더니, 무협소설이 나오고, 다시 보니 게임 얘기를 하고 있고, 또 들여다보니 연애 이야기를 툭 던져 놓는다. 명확한 기준도, 방향도 없이 중구난방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 작가가 바로 박민규다. 작가의 소설은 온갖 장르에 한 다리씩 걸쳐져 있다. 그의 소설세계는 딱히 뭐라고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저 ‘박민규 월드’라고 이름 붙일 수밖에 없다.


박민규 월드에 들어가 보면 <지구영웅전설>이라는 희한한 제목의 소설이 있다. 제목만 봐서는 게임인지, 판타지 소설인지 알 수 없지만 읽어보면 지구영웅들에 관한 소설이다. 우리가 잘 아는 히어로인 슈퍼맨과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이 나오는데, 정작 주인공은 그들의 조수 역할을 하는 바나나맨이다. 미국의 유명한 히어로 만화를 패러디하여 미국의 제국주의와 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을 꼬집은 소설은 경쾌한 어조로 가볍지 않은 문제들을 다룬다. 소설 속 영웅들은 만화처럼 인류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 슈퍼맨은 미국의 강한 군사력을 상징하며 전 세계의 전쟁터를 날아다니고, 배트맨은 거대 자본을 상징하며 히어로들의 리더가 된다. 어린 시절 슈퍼맨을 동경했던 주인공은 슈퍼맨에게 구출된 뒤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맨이 되어 영웅들의 조수가 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내용이 그럴듯하다. 박민규스러운 입담으로 미국 히어로들과 제국주의의 숨겨진 이면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박민규 월드는 독자들에게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상황을 휙 던져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다. 죽지 않는 무림 고수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龍龍龍龍)나, 세계를 너구리 게임에 비유한 이야기(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 온갖 장르를 넘어서 범상치 않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러다보니 자칫 독특한 소재만을 찾는 작가로 치부될 위험도 있지만 그가 문단에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깊은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 비현실적인 소재들을 통해 세상을 비틀어보는 작가의 시각이 그의 문학세계를 완성시켜 준다. 삶이 지루하고, 세상이 재미없다면 박민규 월드에 한 번 놀러와 보시라. 분명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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