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 개론>을 본 사람이라면, 영화 속 풋풋한 사랑이 시작되는 건축학 수업에 괜히 흥미가 생길지도 모른다. 서연과 승민이 처음 만나게 되는 건축학 수업, 그리고 다시 만난 후 승민이 서연에게 지어줬던 제주도의 집. 그 집은 둘에게 있어서 그저 보통 집이 아니라 그 자체로 첫사랑의 추억이다.

영화 속 서연의 집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와 합쳐져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지만, 실제로도 건축물은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인 디자인부터 건물의 소재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그냥’ 지어지는 건축물은 없다. 문은 문대로, 기둥은 기둥대로 의미를 지니고 지어지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의 의도를 드러내기도 하고, 사회와 소통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기도 한다. 혹은 건물 자체를 상징하는 표현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손수호 논설위원은 ‘매혹의 건축’ 칼럼에서 삼성 리움 미술관에 대해 “테라코타 벽돌, 부식 스테인리스, 블랙 콘크리트를 사용한 건물이 조화를 이뤄 미술관 자체가 컬렉션이 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미술품들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곧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스토리텔링’이 각광받으면서 이를 건축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외국의 경우 미술관이나 공원, 국회의사당까지 다양한 건축물에 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그러한 결과물이 많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 고고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과 건축학을 접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실험적인 건축물도 생겨나고 있다.

그 자체로 멋들어진 건축물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한다. 하지만 건축물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보게 될 때, 그것은 단순히 멋진 건물이 아닌 의미 있는 무언가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건축가들이 스토리텔링을 담아 지은 건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뿐이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경기도립박물관도 그런 건물 중 하나다. 언뜻 보면 잘 알지 못할 수 있겠지만, 경기도립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전통을 담고 있는 그릇’을 상징하고 있다. 창문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박물관의 특성을 고려해 건물 외부는 과감히 창문이 적은 석벽처럼 구성했는데, 이는 둔탁한 고체를 의미한다. 반면에 건물 내부는 산업 재료인 유리와 금속으로 만들어 투명하고 빈 공간을 나타냈다. 이러한 안팎의 대비구도는 전통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스토리를 만족시킨다. 이렇게 재료의 조합만으로도 건축물에 하나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담긴 건물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프랑스 라데팡스 지역의 ‘라 그랑드 아르슈’가 있다. 라 그랑드 아르슈는 ‘세계로 향하는 창’이라는 의미로 설계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높이 110미터의 건축물이다. 이 구멍은 샹젤리제의 개선문과 루브르 궁전을 지나는 직선의 연장선에 속해 있는데, 개선문, 루브르 궁전 등의 과거를 거치고 이 구멍을 지나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뜻으로 설계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대학 근처에도 이런 건축물이 있을까? 광장동에 있는 광진청소년수련관ㆍᆞ광진구민체육센터는 건축가의 설계 의도가 잘 표현된 건물이다. 이를 설계한 건축 사무소 ‘GA거림’ 이동희(건축ㆍ78졸) 건축가는 설계 단계에서 청소년수련관과 체육센터라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충족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이 씨는 “전체적으로는 체육 공간이다 보니 운동의 만족감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어요”라며 “이를 위해 3층에 걸쳐 바깥에 데크를 만들어 외부 공간을 많이 확보했죠”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 건물에는 구 모양의 천체 투영실도 설치되어 있다. 그는 “대개 천체 투영실은 180도의 반구 모양이 대부분이지만 이 건물의 천체투영실은 360도의 구 모양으로 지었습니다”라며 “청소년들의 꿈과 태양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착안했죠”라고 밝혔다.

또한 이 건물의 외부 디자인은 광진구 심벌마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동희 씨는 “광진구를 상징하는 심벌마크가 아차산, 한강, 돛대로 이뤄져 있기에 이를 건물 외부 디자인에 적용했죠”라고 설명했다. 건물의 지붕 디자인을 돛대모양으로 한 것도 그 이유라고 한다. 돛대 모양의 이 지붕은 봄에는 녹색 조명을 받아 아차산의 형태를 보여준다. 또한 여름에는 한강을 상징하는 파란 조명을 받고, 가을에는 황색 조명을 받아 돛대를 형상화 한다.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흰색 조명을 받아 백색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 씨는 “이런 것이 바로 지역의 특색에 맞는 디자인입니다”라며 “‘광진구를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끌어낸 성공적인 사례죠”라고 말했다.

건축업계의 종사자들은 실제로 건축 스토리텔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동희 씨는 건축 스토리텔링을 ‘일종의 컨셉’이라 표현했다. 그는 “단순히 기술적인 지식으로만 접근해서는 새로운 컨셉의 설계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이 분야의 지론입니다”라며 “이제 건축 기술과 예술이 합쳐진 건축이 대세를 이루고 있죠”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건축을 인문학의 영역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건물의 설계 과정에 대해 건축물이 설치될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주변 환경에 맞는 컨셉을 찾는 과정에서부터 설계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컨셉을 정한 후 이를 표현하는 과정이 바로 설계인 것이다. 그는 “설계 상황에 적합한 학문을 찾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일반인들도 건축 스토리텔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희 씨는 평상시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이 어떤 매력을 뿜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이 씨는 “건물의 스토리를 이해하고 읽도록 노력하세요”라며 “이런 과정을 충실히 이행한다면 건물을 설계한 사람과 동등한 눈높이로 건축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반인이 건축물에 입혀진 스토리를 읽을 때야말로 그 건물은 진정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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