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의 확산이 민주주의나 군사독재정권 타도라는 구호들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음을 조명한다. 영화에서는 군인에 의한 친구의 죽음, 폭도라는 오명에 대한 분노 등이 한 가운데에 배치된다. 역사적인 사건의 이면에서 우리는 ‘일상적인 우리의 삶이 한 순간도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음’을 읽어낼 수 있다.

요즈음의 대학생 사회에서는 ‘반(反)정치’가 유행처럼 번져나간다. 서강대에서는 축제 때 부를 밴드들이 ‘정치색을 가지고 있다’라는 이유로 많은 비난이 오가고 있고, 서울시립대에서는 교지가 ‘정치색’을 띤다는 이유로 중운위 의결로 예산을 삭감했다. 우리학교도 이에 벗어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반정치의 레토릭’, 즉 정치적인 것은 나쁘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정치는 분명한 정치적 구호다. 정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전자에 대해 ‘정치적’이라는 근거로 비난을 가하는 것은, 반정치를 외치는 자가 설정한 ‘정치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강요로 전환된다. 이러한 과정은 특정 가치의 주장과 설득, 즉 정치적인 작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정치의 정치구호들이 나쁜 이유는, 자기모순의 오류에 빠져있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모든 다양한 목소리와 생각들을 쉽게 무시해버릴 수 있는, 바꿔 말하면 ‘정치적이지 않은 것’만을 수용하겠다는 가치배제적인 레토릭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매 삶마다 정치적인 것들이 지나간다. 소위 ‘학생운동진영’이 비정규직문제와 부당해고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은 그것이 나와 내 친구의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나 방향 혹은 ‘운동’ 자체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 공격과 설득, 합의 등의 과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이기 때문이 안 된다’라는 주장은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또 그 이야기를 배제하는 과정이 폭력적이라는 점에서 나쁜 주장이다.

모두가 모든 사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반론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구라도 어떠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어느 사회에서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라도 당신의 이야기도 ‘정치적인 것’으로 배제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의 내 모든 이야기도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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