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면서, 사람마다 다른 기운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화 내내 그 사람의 얘기에 기분이 좋고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의례적이고 불성실한 대화로 서둘러 인터뷰를 끝내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인터뷰를 하며 듣는 이야기 안에는 짧은 시간임에도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 등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모습을 형성한다. 이럴 때마다 ‘제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 집 가훈은 ‘올바른 판단을 하자’다. 초등학교 때 숙제로 가훈을 써서 내야 했던 이후로는 별로 생각할 일도 없었는데, 요즘 들어 유난히 이 말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된다. 최근에도 그럴 일들이 있었다. 지성의 상징이던 총장이 잘못된 행동과 판단으로 신뢰를 잃은 채 결국 사퇴하는 모습을 봤고, 개인적으로는 알고 지내던 사람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됐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결국 생각하게 되는 건 ‘바른 판단’의 문제다.

나보다 어른이고 경험도 많은 만큼 나름 믿었던 사람들이 바보 같은 판단, 옳지 못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힘들고 답답하며 실망스럽다. 그런데 이런 일은 생각보다 드물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아졌다. 공공기관 권장도서로 선정됐던 책이 반정부ㆍ반미 도서라는 이름으로 국방부 불온서적이 됐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공익을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불온서적 지정이 위법이 아니라는 판결이 났다. 대체 무엇이 공익인 것인지, 이렇게 혼란스럽고 어이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크게 보았을 때 분명 잘못된 행동임에도 사람들은 눈앞의 편함과 이익에 어두워져 바른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을 많이 겪을수록, 내가 내린 판단들은 과연 옳은 것인지도 확신하기 두려워진다.

바른 가치를 따라 바른 판단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때로는 참 순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권의 비리가 매일같이 터지고,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못 본척하는 기업이 군림하는 사회에서는 바른 판단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 신문사에 있으면서 좀 더 자세히 접하게 되는 대학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내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진리나 소중한 가치를 그저 ‘이상적’이라거나 ‘뭘 모르는 얘기’로 치부할 때, 이미 그런 경험을 몇 번 해봤으면서도 새삼 좌절하게 되고 또한 화가 난다.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보면서 내가 이상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가끔은 혼란스럽다.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래서 가끔은 의롭고 선한 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싶다. 얼마 전 기분 좋은 인터뷰에서 만난 사람은 권선징악을 믿는다고,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화처럼 ‘…그리하여 진실은 밝혀지고 착한 사람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와 같은, 이런 ‘순진한’ 생각을 가진 바른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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