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를 마친 신복룡 석좌교수 인터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우리 대학에는 강산이 다섯 번 변할 동안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 오신 분이 있다. 바로  학부생때부터 시작해 우리대학과 52년째 인연을 맺고 계신 신복룡(정치대・정외) 석좌교수님이다. 그는 지난 1학기 수업을 마지막으로 강의를 마쳤다. “이렇게 오랜 기간 교단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면서도 강의를 마친 섭섭함을 아직은 지우지 못한 신복룡 교수님을 만났다.

ⓒ 이호연 기자

어린시절의 ‘한’이 공부의 원동력이 돼
교수님이 우리 대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학부생 때부터였다.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학생이었던 그는 서울 빈민가의 구멍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공부의 꿈을 키웠다. 이 경험은 고스란히 그가 학문에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의 한(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훗날 성인(成人)이 되어 ‘곁길’이 나를 유혹할 때면 소년 시절 저 자신과의 약속을 되새기면서 스스로를 질책했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담히 전하는 교수님의 얼굴에서는 지난 세월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이런 그의 어린 시절은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 역사학의 키워드는 역사의 주류로부터 배제된 민초들의 서러움입니다. 저는 스스로 민초들을 위해 뭔가 항변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고, 그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서는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거나 낮게 평가된 이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드러난다. 서민들을 이끌었던 제천의식에서부터 민속과 풍수지리설, 그리고 풍수지리설로 인해 나타난 우리나라의 지역감정까지. 그가 다루는 분야는 이제까지 학계에서는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그의 저서 『한국분단사연구』와 『한국정치사상사』로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2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 이호연 기자

학생들과 ‘세상사는 길’을 고민한 지난 52년
그렇다면 이렇게 오랜 기간 학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해오신 교수님께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망설이지 않고 우리 대학에 있었던 ‘10·28 건대항쟁’을 꼽았다. 10·28 건대항쟁은 1986년에 있었던 민주 항쟁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피검자 수가 가장 많았던 사건이었다. “학생들이 데모하던 모습이나 다치고 함께 울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담담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셨다. 당시 학생들이 남긴 낙서와 메모, 그리고 교수님께 보낸 학생들의 편지까지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계시다고. “저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사건을 후대에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퇴직 후에 정리해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건대항쟁의 무게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무게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즘 학생들이 역사와 국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취업 걱정, 학점 걱정 등을 더 많이 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예전의 학생들에게는 적어도 국가·민족·역사·인류애와 같은 서사적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는 서정적 고민만 있을 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멀리 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한데 말이죠.”

ⓒ 이호연 기자

교수님께서 이런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바로 여행과 독서다. 그는 학우들에게 추천하는 책으로 『플루타크영웅전』과 『삼국지』를 들었다. “인생은 얼마나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꿈과 야망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퇴임을 앞두고 우리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여행을 할 것과 취업에 목매지 말 것을 당부했다. 특히 취업에 관해서는 “첫 직장은 첫사랑보다 더 운명적입니다. 즐겁고 보람 있는 직업을 찾기 위해 좀 더 기다리고 노력했으면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돈 때문에, 부모님께 미안해서, 애인 보기 부끄러워서 쫓기듯이 허둥대며 아무 곳에나 취업하지 말라는 것이다. 취업만을 위해 달리는 우리 세대에게 잠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교단에 서는 일은 끝났지만 그는 앞으로 『플루타크영웅전』과 『삼국지』를 번역할 예정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연구를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역사를 고민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라는 백 마디 말보다 그의 이런 삶이 우리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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