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한 친구에게 이상형을 물었다가 “난 유도리 있는 사람이 좋아.”란 답변을 들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순간 갸우뚱 해져 “유도리?”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응, 너무 꽉 막히지 않고 여유 있는 사람 말이야.”라고 답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유도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상기의 경우 외에도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그리 꽉 막히면 못 쓴다", "너무 빡빡하게 그러지 말고 유도리 발휘해", "짜식 유도리 없기는" 등으로 활용된다. 유도리라는 말은 원래 일본어 ゆとり(유토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간·금전·기력 등의) 여유를 뜻하는데, 우리는 보통 '융통성'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를 돌이켜볼 때 비교적 경직된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일제치하에서는 일제의 억압에 의해, 또 그에 대한 저항을 위해 단결해야 했고, 독립 이후 첨예한 이념간의 갈등 속에서 극단의 선택을 강요받아왔으며, 유래 없는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다른 목소리는 숨죽여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이루고, 다원화시대를 맞아 보다 열린사회로 변화하게 되었으며, 여유와 융통성을 긍정하는 ‘유도리’라는 덕목이 각광받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창의성, 관용 등과 함께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유도리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분명한 원칙과 정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도리’라는 미명하에 불법, 비리, 부정의한 일들이 용인되는 경우이다. 어떤 이들은 상호간의 편의와 부정한 이익을 위해 유도리를 발휘하고, 엄격하게 관리되어야할 검사 및 평가가 눈찡긋함으로 불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상황들이 그것이다. 심지어 옳은 것을 지키려는 사람을 유도리가 없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유도리가 통해선 안 되는 사회적 약속들이 존재한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것, 공정한 절차와 과정을 준수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만약 유도리가 잘못 사용되어 이러한 기본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작게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이것이 모여 사회 전체의 악화라는 보다 심각한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 사회는 구성원들 간의 약속과 그 이행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상기할 때,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유도리(ゆとり)있을 뿐만 아니라 유도리(有道理)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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