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대학교 박물관은 ‘사진으로 보는 건학 80년’이라는 자료집을 냈다. 이 자료집에는 본교의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선생이 1931년 구료제민의 뜻을 품고 설립한 경성설비진료소 설립기성회 발기총회의 모습이 실려 있다. 바로 건국대학교병원의 모체이자 우리 학교의 건학 기점이 되는 순간의 사진이다. 이 자료집에는 1955년 상허선생이 지금의 서울캠퍼스 착공식에서 첫 삽을 떠는 모습도 실려 있다. 자료집에 있는 서울캠퍼스의 초기 모습은 황량한 벌판에 2층짜리 건물 몇 동이 서 있는 것이 전부다. 장안벌이라는 사진설명이 없었다면 만주 벌판인지 시베리아 벌판인지 구분이 안 될 삭막한 풍경이다. 자료집에 있는 사진들은 70년대와 80년대까지도 우리대학의 모습이 초라하고 어설펐음을 증언해주고 있다. 이어 자료집은 우리대학이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박물관 측은 건학 80년을 맞아 우리대학의 역사를 보존하고 후학들에게 전하는 차원에서 이 자료집을 기획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료집은 박물관 측의 기획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상허선생은 자신이 부모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개인의 것으로 하지 않고 고스란히 사회에 되돌려 주고 있다. 개인의 안락함과 부귀보다는 민중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가 경성실비진료소이고 조선정치학관(1946)의 설립이며 장안벌의 현 캠퍼스 마련이다. 상허선생의 서거(1972) 이후 우리 대학의 쇄락과 부흥 역시 사람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리더와 구성원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해이해졌을 때는 쇄락했고 도전정신과 의욕을 갖고 있었을 때는 부흥했다.

어디 우리 학교뿐이랴. 동서고금의 역사는 그 어떤 위대한 문명과 국가도 풍요로운 자연조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실증하고 있다. 그것은 환경보다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 것이다. 그 시대의 지도자와 구성원들이 진취적이고 헌신적일 때 국가와 문명은 부흥했고 반대의 경우 쇄락했다. 황량한 장안벌판에서 오늘날의 우리 학교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지난날 우리 모두는 위대했다. 하지만 문제는 앞날이다. 우리는 올해 건학 81주년을 지나 건학 100주년을 바라보고 달려 나가고 있다. 미래를 위해서는 성취는 잊어버리고 오히려 지난날의 실수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우리대학은 총장 선거가 진행 중이다. 이번 선거에는 적지 않는 분들이 출마의사를 밝히고 전체 구성원과 총장추천위원회의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중이다. 대학에서 총장선출이 중요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겠지만 이번 총장선출은 특별한 듯하다. 그것은 전임 총장의 중도퇴진이 남긴 상흔을 치유하고 학교를 안정화시키면서도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이 이번에 출마의사를 밝힌 분들은 모두가 학내에서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는 분들이다. 따라서 누가 최종 선출되더라도 우리 학교는 후퇴보다는 발전할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안정과 도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에 누가 가장 적임자일지는 총추위 위원들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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