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언제나 큰 힘을 갖는다. 누군가를 자살에 몰아넣기도 하고, 누군가가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주기도 한다. 이런 특성은 놀랍게도 인터넷상에서 더 크게 발휘된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 혹은 인터넷 게시판의 글 하나하나가 무시 못 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련 영향력은 좋은 쪽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인터넷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는 미담도 있지만 인터넷 게시판의 글이나 악성 댓글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는 이보다 더 흔하다. 가장 쉬운 예가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이다. 얼굴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악성 댓글의 표적이 되기 쉬운 연예인들은 댓글 내용에 상처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2007년에는 가수 유니가, 이어 2008년 10월에는 배우 최진실이 자살을 했다. 그 가장 큰 배경으로는 인터넷상의 악성댓글이 지적됐다. 또, TV 토크쇼에 나와 댓글에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는 연예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시행된 제도가 ‘인터넷 실명제’다. 인터넷 실명제란 포털 사이트 등의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등 본인확인 과정을 거쳐야만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인터넷 게시판의 익명성을 악용한 사이버 인권침해, 거짓 여론 형성 등으로 인한 개인들의 피해 및 사회적 비용이 확대되자 논의가 확대됐고, 2007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높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에서도 인터넷 실명제가 인터넷 게시판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인터넷 게시판을 운영하는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인터넷 실명제가 불법정보 게시나 악성댓글 퇴치에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터넷 이용자들을 해외 사이트로 도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서울대학교 한국행정연구소에서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실명제 시행 이후 대표적인 인터넷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갤러리 게시판의 악성댓글 수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방을 담고 있는 댓글은 342개에서 307개로, 욕설이 포함된 댓글은 65개에서 27개로 줄었다. 그러나 전체 게시글 수는 실명제 이전 1,319건에서 이후 399.7건으로, 일일 평균 댓글수도 4,259.5건에서 2,156.4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전체 게시글이 줄어든 것에 비하면 악성 댓글 통제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결국 인터넷 실명제는 본래 원하던 효과는 보지 못한 채 인터넷 게시글 억제라는 부작용만 내고 있는 것이다. 즉, 인터넷 실명제처럼 제도적 규제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이버 세계가 또 하나의 세계로 부각되고 있는 요즘, 인터넷상에서의 언어사용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 등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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