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공모자들’을 보았다. 귀신이 나오는 것이든, 살인이 벌어지는 이야기든 무서운 영화는 무조건 피하는 편인지라 연쇄살인마가 나온다는 ‘이웃사람’ 대신 선택한 영화였다.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첫 장면부터 피에 젖은 손이 등장하고, 메스가 살을 뚫고 박히는 소리를 영화관의 대형 스피커로 생생하게 들으면서 결국 두 눈을 감아버렸다.
두 시간 가량 영화를 보는 동안 정신이 피로해졌다. 영화는 자극적이었다. 장기 밀매를 다룬 내용인 만큼 어느 정도 스릴감 있는 장면이 들어갈 수 있지만 일부는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거나 성적인 장면들이 껴있었고, 그래서 불편했다.

지금은 자극적인 시대다. 이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가끔 자극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흐름에 따라 자극적인 것도 더 빨리, 더 센 것들이 나오다보니 웬만한 것은 축에 끼지도 않는다. 언젠가부터 15세 관람가 영화에도 총에 맞아 살점이 튀어 오르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낚시성 기사들이 즐비하다. ‘충격 고백!’, ‘A양, 알고 보니…’와 같은 제목은 벌써 식상해졌고, 연예뉴스의 제목은 선정성까지 띠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막상 클릭해보면 사건 중 일부를 확대해놓은 것에 불과하거나 심지어는 관련 없는 내용인 경우도 있다. ‘김태희, 초미니 입고 운전석에… 몸매가 ‘헉!’(일간스포츠)’ 이라거나 ‘“안철수 여성 임신 시킨 뒤 낙태” 사실은… (조선일보)’ 까지. 최근 포털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들이다. 정보 전달보다는 이렇게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이용해 진짜처럼 써 놓고 눈길 끌기에 급급한, 정도가 지나친 것도 많다.

워낙 센 것들에 둘러싸여 있어서일까. 하루에도 끔찍한 사건사고 소식이 몇 개씩 터지는 무서운 세상,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어지간한 소식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잔잔한 영화는 재미없다며 못 견뎌하고, 드라마 진행이 조금만 느리면 늘어진다며 답답해한다. 스스로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 자극적인 사회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90년대 복고 열풍이 불고 있다. 90년대 학생 시절을 소재로 한 그들의 문구는 대부분 이렇다. ‘순수했던 그 시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때가 좋았지’ 라며, 친구들과 수다만 떨어도 즐거웠던 때묻지 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복고 열풍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팍팍하고 자극적인 소재가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숨통이 되어주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운 음식은 먹을수록 중독된다고 한다. 그 매운 맛을 느끼는 것은 미각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는 ‘통각’이다. 그러니 매운 것을 많이 먹는 게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이미 매운 맛에 중독된 사람은 위에 부담이 가고 속은 쓰린데도, 그 맛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도 그쯤 어딘가 와 있는 것 같아 무섭다.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만 하지 말고, 마음마저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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