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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탈북 대학생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남한, 탈북 대학생들의 생활은 어떨까
김혜민 기자 | 승인 2012.09.09 22:41

군복무 7년차에 들른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 동생들이 모두 행방불명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어머니와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어머니는 중국에 있다며 살기 좋다고 탈북을 권했다. 처음에는 김일성 장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였으나 나중에 마음을 바꿔 국경을 넘게 됐다.

중국으로 넘어간 후 한국드라마를 보게 되면서 남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북한에서는 한국이 못 살고, 빈부격차가 심하며, 사람이 못 살 세상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풀하우스’나 ‘시크릿가든’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도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하고 생각했다. 덕분에 얼마 후 한국으로 갈 것이냐, 북으로 돌아갈 것이냐 하는 어머니의 제안에 한국을 택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들어가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몽골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태국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북경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으로 향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대사관을 한 곳에 몰아놓고 철저히 관리한다. 따라서 한국 대사관에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한국대사관에 들어갈 때 자동문을 여는 방법은 모르겠고 뒤에서 공안경찰은 쫓아와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다. 한치의 망설이 없이 좌우로 열리는 유리문을 앞으로 밀어서 열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의 힘이 그토록 대단한 줄은 처음 알았다. 5만 명 중 한명 꼴로 대사관 진입에 성공한다 하니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확률이다. 그렇게 들어간 대사관에서도 1년 3개월 동안 창문도 없는 방에 80명과 함께 지내야 했다. 잠도 쪼그리고 잤다. 같이 있던 사람 중에는 못 견디겠다며 미국으로 간 사람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한국에서 처음 느낀 것은 ‘밝다’는 것이었다. 북은 전기가 거의 없고 하루에 1~2시간만 전기를 공급한다. 심지어 농촌은 불 없이 사는 곳도 많다. 그래서 남한 거리는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남한에 오자마자 살기 위해서는 기술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폴리텍 대학에서 1년 공부했다. 자격증을 따고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나중에는 카센터도 차렸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까 한계도 있고, 그 상황에 안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우리 대학에 재학 중인 신호명(경영대ㆍ경영2)학우의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는 신호명 학우와 같이 대학에 다니는 탈북학생은 의외로 많다. 남한에는 2011년 기준 20,539여명의 탈북자가 거주하고 있다. 그 중 대학생이 속한 20~39세는 5,644명으로 27%를 차지한다. 탈북학생들은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입학의 길이 열려 있어 원하면 대학에 다닐 수 있다. 하지만 학업 능력이나 경제적 압박 등의 문제로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홍정욱 의원의 「북한이탈대학생 관련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북한 이탈 대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은 28.4%로 남한 대학생 중도탈락률인 4.5%의 6.5배에 달한다. 또한 휴학률도 43.6%로 남한 학생들의 휴학률인 31.6%에 비해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게다가 남한 대학생의 휴학률은 군입대 휴학을 포함한 수치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2.9배가 더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김혜민 기자  kimhm333@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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