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흉한 세상’이란 말이 어울리는 요즘이다. 성폭행, 살인, 시신유기까지 지지치도 않고 하루에 한번은 꼭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길을 가던 사람들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까지 이제 누가 희생될지 모른다. 조금만 어두운 거리를 걸어가는 것도 두려움에 걸음이 빨라지고, 옆집 사람도 아랫집 사람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사회. 세상이 어찌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사람들은 불안에 떨기만 한다. 영화 <이웃사람>은 절묘하게도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무서울 만큼 비슷하게 보여준다. 그 영향을 받아서일까, 영화는 화제를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다. 겉보기에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스릴러로 보이지만 실제로 영화는 강산맨션과 그곳에 사는 인물들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춘다. 또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각 인물들은 생생하게 현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그 모습이 어딘가 찜찜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그들의 모습이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지금, <이웃사람>을 그저 그런 스릴러 영화로 넘겨버릴 수 없는 이유다.

<이웃사람> 줄거리: 강산맨션 202호에 사는 소녀 여선이 연쇄살인에 희생된다. 불안해하는 주민들 가운데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102호 남자가 포착되고, 주민들은 조금씩 102호 남자를 수상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한편 그 역시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에 대해 눈치를 채고, 자신이 죽인 여선과 닮은 또 다른 소녀 수연을 죽이려 한다.

   



토론 참여자: 정하늘(공과대ㆍ항공우주3), 윤소윤(경영대ㆍ경영3) 학우

※아래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 많이 화제가 된 영화였는데요. 영화를 감상한 소감은 어떠신가요?
윤소윤(윤): 많이 무서웠는데 그만큼 재밌기도 했어요. 범인이 잡힐 듯 말 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긴장감을 높이더라구요.
정하늘(정): 저는 원래 강풀 만화를 좋아해서 원작을 봤었거든요. 원작을 잘 살린 영화인 것 같아요. 연쇄살인을 소재로 다룬 영화인데도 재미있는 장면도 꽤 많았구요. 제 생각에는 내용상의 무거움과 별개로 너무 무섭게만 그리지 않아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이나 장면이 있었나요?
정: 표종록이란 인물에 대해서 생각 해볼 만한 것 같아요. 표종록 역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잖아요. 남들의 눈을 피해 밤에만 경비원 일을 하면서 공소시효가 끝날 때를 기다리는 인물이죠. ‘지금까지 잘 버텨왔는데 이제 몇 개월 안 남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말이 공소시효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나라 제도상으로는 공소시효가 15년이에요. 사람을 죽여도, 성범죄를 저질러도 15년 동안만 버티면 무효가 되는 거잖아요. 이 기간만 지나면 죄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조금 확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지금 우리 주위에도 표종록같은 인물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거죠.
윤: 저는 다른 것보다도 사건이 일어난 뒤에 주민들의 반응이 흥미로웠어요. 가방가게 아저씨가 뉴스로 살인이 일어난 걸 보는데 자기가 팔았던 가방에서 시신이 발견됐잖아요. 생각해보면 빨리 신고하는 것이 당연하거든요. 그런데 부인이 ‘가게 문 닫을 일 있냐’고 하면서 신고를 못하게 하고, 부녀회장도 집값이 떨어지는 걸 먼저 걱정하는 거예요. 만약 사람들이 일찍 신고를 해서 수사가 이루어졌으면 범인이 빨리 잡혔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단서들이 노출되는데도,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입을 닫고 있는 모습이 더 무서웠어요.

   
▲ ⓒ김용식 기자


특히 최근 들어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난 만큼, 지금 우리 사회와 영화가 연결될 지점이 많아 보이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지금 현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정: 영화에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 꼬집은 거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주민들의 반응처럼, 요즘은 ‘괜히 나한테 피해가 오면 어떡할까’ 하는 마음에 모른척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윤: 네, 맞아요. 또 하나 무서운 건 같은 동네를 살아도 이제는 말만 이웃사촌이지 누가 어떻게 사는지 아무것도 몰라요. 이웃사촌이란 건 옛날 얘기가 됐죠.
정: 제가 2005년에 이사를 했었는데 그 때는 이사를 하면 같은 동 사람들한테 떡을 돌렸었어요. 그런데 그 때 이후로 누가 이사떡 돌리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서로 관심이 없다는 거죠. 옛날에는 문도 다 열어놓고 지나가는 사람 보면 인사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런 집을 찾기 힘들죠. 통영 초등학생 살인사건도 이웃에 살던 사람이 범인이었다고 하잖아요. 영화에서 살인범이 내려치는 소리에 물컵이 떨리고 전등이 깜빡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웃사람들은 그저 ‘어디서 공사하나보네’ 이렇게 생각하겠죠.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웃사람이라는 제목만큼 무서운 소리가 없어요.
윤: 살인범이 여선을 납치하는 장면에서 그걸 정말 잘 느낄 수 있었어요. 여선이 남자의 차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 감사인사를 하니까 ‘이웃사촌지간인데 뭐 어때’라고 말하거든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하고서는 여선을 붙잡아 끌고 들어가죠. 살인범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하는 말들이 평소 우리도 쉽게 말하곤 하는 평범한 이야기여서 굉장히 섬뜩했어요.


   
▲ ⓒ김용식 기자


그렇다면 범죄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윤: 흉악범이나 싸이코패스 범죄자들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정서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해요. 어렸을 때부터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배려하기를 배우기보다는 성적과 대학입시만 강조하잖아요. 경쟁에만 찌들어 있다 보니 정서적 능력들이 저하되는 것 같아요. 또,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니까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범죄를 저지른다고도 하구요. 그래도 요즘 상황을 보면 바뀔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워낙 무서운 범죄 사건이 많이 일어나니까 심각성을 느끼는 거죠. 조금 슬프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바뀐다면 좋겠어요.
정: 저는 범죄에 대한 처벌이 좀 더 강화됐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처벌이 강하면 범죄율이 낮아지지 않을까요? 특히 아동 성범죄의 경우 아이한테는 평생을 안고 갈 상처인데, 범인은 겨우 몇 년 동안 수감돼있다 나오면 끝인 거예요. 지금의 제도는 너무 범인에 대해서 관대한 것 같아요. 탄원서 몇 개만 내거나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바로 감형되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법 제도부터 엄격해졌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지금 이런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만큼 이에 동조하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면 점차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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