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주제의 하나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학생들과 읽었다. 책을 볼 때마다 새로운 맛과 생각할 거리를 발견하는 게 고전의 묘미라고 내게도 이번 독서는 또 다른 사색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친애로 번역되는 '필리아'가 새삼 와 닿았는데 사회적 경험이 제법 쌓이고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에 진실한 우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기 때문이리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수성, 상호성, 인정을 친애의 세 요소라 말하면서 완전한 친애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윤리를 포함한다고 말했는데 예전과 달리 이 말에 참 공감이 간다.

늘 시국사건으로 최루 가스가 자욱했고 데모가 잦은 80년대를 보낸 우리 세대는 시대의 무게에 짓눌려 대학의 낭만이나 즐거움을 만끽하기보다 어찌 보면 지나칠 정도로 당위적으로 친구나 젊음에 대해 생각했다. 가끔은 정치 문제나 학내 시위에 대한 의견차이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친구들 간에 갈등이 있기도 했다. 민주와 반민주의 타협 불가능한 대립구도가 사회 분위기를 지배한 시대에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쉽게 편을 가르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무겁고 무서운(?) 분위기를 피해 당구, 술, 미팅 같은 재미를 쫓아다닌 놀자 부류도 있었다. 또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도서관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책벌레 타입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엄혹한 시대 분위기에서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도 친구이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유달리 동기애가 강했던 우리 친구들과는 그래서 많은 문제를 두고 서로 원만한 결론을 내려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때로 밤새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런 감정과 기억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다시 찾는 우정의 동력이 된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해 각자 사회생활에 매달리고, 자기 가족을 돌보면서 본의 아니게 친구를 챙길 여유를 잃기도 했지만 그런 순수성이 있었기에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서…

그래서 모처럼 상가 집 같은 데서 친구들과 볼 기회가 생기면 유달리 반가움과 더 자주 보지 못한 아쉬움이 드는 것이 나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친구와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처럼 젊을 때 추억을 함께 나누고 허물없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새로 만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서 이런 공감대가 친구들 사이에서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행복한 삶의 실현에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사회관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요즘 학생들은 취업 준비와 여러 생활문제 때문에 많은 친구 관계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인생의 고비 고비를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친구를 만드는 것도 자신을 위해 젊은 시절에 꼭 챙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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