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가족이란 더 이상 옛날의 의미가 아니다. 몇 십년 전만 해도 가족은 인생의 전부이자 때로는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약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일까?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영화 <가족시네마>는 ‘가족’의 의미와 기능을 상기시킨다. 경제력을 거세당한 가장의 불안함, 맞벌이를 하며 애지중지 키웠던 딸을 잃은 어머니의 상실감, 12년 전 등록금 마련 때문에 기증했던 난자가 자식이 돼 내 앞에 서 있는 당혹감, 출산과 양육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불편한 진실까지…. 영화 <가족시네마>는 네 편의 이야기를 통해 다각도에서 오늘을 사는 ‘가족’을 분석한다.

토론 참여자: 박철영(상경대ㆍ경제2), 이소민(정치대ㆍ정외2)

episode1. 순환선: 직장을 잃은 ‘상우’의 근심은 하루가 갈수록 커지고, 둘째를 임신한 아내의 배도 덩달아 커진다. 둘째가 좀 더 늦게 나왔으면 좋겠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상우는 오늘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순환선에 올라탄다.

episode2. 별모양의 얼룩: 워킹맘 ‘지원’의 하나뿐인 딸이 유치원 수련회에서 사고를 당해 죽었다. 1년이 지났지만 딸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질 뿐. 그런데, 사고 당일 별모양 브로치를 한 여자아이를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난다.

episode3. E.D.571: 승승장구하는 커리어우먼 ‘인아’. 골드미스인 그녀앞에 12년 전 등록금을 구하기 위해 팔았던 난자기 12살 딸이 되어 나타났다. 인아의 딸은 자신을 키워준 부모가 양육권을 포기해 고아원에 들어갈 위기에 놓였으니 도와달라며 그녀를 협박한다.

episode4. 인 굿 컴퍼니: 출산 때문에 부당 해고를 당할 위기에 놓인 이 대리. 여자 직장 동료들이 도와준다기에 자신도 버텨보기로 작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들은 하나 둘 떠나버린다.

영화 <가족시네마>는 4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4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전체적인 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철영(박): 영화를 본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네 편의 이야기에서 모두 ‘출산’이란 주제가 보이더라고요. ‘순환선’과 ‘인 굿 검퍼니’는 출산 전 부모가 겪는 현실적 고민들을 다뤘다고 생각해요. ‘잉태’라는 것은 물론 축복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부모에게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E.D.571’과 ‘별모양의 얼룩’은 다음 세대를 양육하면서 겪는 기성세대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보여줬죠. 네 편의 영화가 <가족시네마>라는 이름으로 뭉쳐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소민(이): 저는 네가지 이야기의 공통된 주제가 ‘가족’이라고 봤어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족의 의미는 옛날과 달라요. 영화는 각박해진 사회가 가족의 의미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보여주고 있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고 자기 자식의 탄생을 두려워하는 가장, 유치원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 유전자만 공유했을 뿐인 자식, 일을 하기 위해 정관수술을 하는 남자까지…. 이 모든 것들은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던 모습이잖아죠.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이기 때문에 치열한 사회를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순환선’은 주로 지하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혹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또, 주인공이 지하철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상상속에서 주인공이 생닭을 아내 배에서 꺼내 입에 넣는 장면이 가장 강렬했어요. 장면의 의미를 떠나 영상 자체가 놀랍더라고요. 또한, 주인공이 지하철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 공간이 직장인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하철을 타보면 출근하느라 바쁜 직장인들을 흔히 볼 수 있잖아요. 바쁜 사람들 속에 갈 곳 없는 실직자의 신세가 선명하게 대비 되는 효과를 주기엔 지하철이란 배경이 적절하죠.

박: 지하철이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터널을 빠져 나오던 마지막 장면이 기억나네요. 저는 이 부분을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는 태어나고 삶은 계속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거든요. 그리고 영화 중반을 보면 사람들 모두 회사를 가기 위해 역에서 내리고 주인공만 우두커니 앉아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감독은 지하철이란 공간을 통해 실직자의 아픔을 극대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별모양의 얼룩’에서는 주인공이 겪는 사건의 원인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관객이 영화가 의도하는 메시지를 전달받는데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나요?

박: 영화가 시작할 때 주인공이 계속 딸의 사진을 보잖아요. 그 장면에서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궁금해졌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극 초반에 어떤 일이 일어난건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죠.

이: 처음에는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단 사실을 빨리 알려줬다면 영화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꼈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사고가 일어난 경위를 뉴스처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슬픔에만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맞벌이를 하면서 바쁘게 키우던 아이가 예고도 없이 저세상으로 갔을 때 느꼈을 상실감을 마치 제가 직접 겪는 것 같았죠.

‘E.D.571’은 철학적인 대사가 상당히 많았어요. ‘그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세상에 내던져 진 사람은 없다’는 주인공 인아의 독백이 특히 그렇죠. ‘자신에 대해서 온전히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인아의 입장인데,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박: 주인공의 말에서 ‘책임질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니 남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어요. 주인공은 실제로도 자신의 생물학적 딸을 책임지지 않죠. 하지만 저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요. 누구도 자신이 원해서 태어나진 않지만, 이왕 태어났으면 세상에 나온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잘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사람은 따뜻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잖아요. 세상에 홀로 내던져 졌다고 해서 행복이라는 인간의 목적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죠.

이: 사실 주인공의 말은 틀리지 않아요. 매우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발언이죠. 하지만 주인공의 방식으로 세상을 산다면 삶이 너무 각박할 것 같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도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의 말대로라면 사람들은 자원봉사를 할 필요도 없을 거에요.

마지막으로 이야기 중 가장 현실적으로 와 닿았던 작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박: 저는 ‘인 굿 컴퍼니’가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눈앞의 이득에 급급해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영화에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모든 것들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꼬집잖아요. 이런 점에서 세상을 삭막하게 만들어 버린 사회제도의 허점도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이: 저도 ‘인 굿 컴퍼니’가 인상적이었어요. 아무래도 임신 문제를 다루다 보니 여성으로서 제가 나중에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느꼈거든요. 불합리한 상황에 항의를 하다가 금방 와해되는 여직원들의 모습은 참 씁쓸한 장면이었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 때문에 답답해지는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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