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정치적 투쟁은 단어들을 점유하기 위한 투쟁’ 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마치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염두 해두고 한 말 같다. 실재로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 이후 현대에 전면으로 나선 이후 다양한 국가들과 진영들이 이 단어를 점유하기 위한 투쟁이 있어왔다. 자유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공화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등등 ‘민주주의’라는 용어 앞에는 그것의 정치적 실현 방법론을 설명해주기 위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근대 이러한 수식어의 쓰임은 동시에 의문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라는 것의 본래 의미는 무엇인가?

‘인민(demos)의 통치(cratie)’라는 뜻을 지닌 ‘데모크라시(democracy)’라는 단어는 귀족정, 과두정, 참주정처럼 특정한 정체(통치 형태)와 통치 원리를 뜻하는 용어들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등이 언급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순전히 정치적인 주장, 즉 인민이 자기 자신을 통치하며, 일부나 어떤 대타자가 아니라 전부가 정치적으로 주권자라는 주장만을 담고”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인민의 자기 통치’를 뜻하는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구체적으로 인민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배해야 하는지, 또 자신들의 주권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알려주는 바가 없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만 보자면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본래의 의미를 잘 실현시키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대에 와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대의, 입헌, 심의, 참여, 자유 시장, 평등 등의 가치들이 본래의 민주주의의 의미를 수반했거나 실현시켰다고 입증할만한 증거도 없다. 때문에 우리가 민주주의의 모호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의 부족함의 연장선상이요, 오늘날 어떤 체제도 ‘민주주의’를 가장 올바르게 시행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각각의 국가들은 이 ‘인민의 자기 통치’ ‘인민의 주권이 가장 잘 실현되는’ 그 방법론을 제시해왔고 수행해왔다. 대의 민주주의, 인민 민주주의, 자유 민주주의 등 ‘민주주의’라는 단어 앞에 각자의 수식어를 덧붙이며 ‘민주주의’라는 목적을 자신들의 방법론으로 실현 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항상 민주주의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정치와 경제의 괴리가 생기거나, 민주주의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생산자와 수용자 간의 괴리가 생기는 등 문제가 생겼다. 오늘날 이미 이 ‘민주주의’에 대한 모호성을 발견한 많은 정치학자, 철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해 성찰하고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공론장이 형성된 지 오래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이고 본래의 의미에 퇴색이 없는 ‘민주주의’란 현실 세계에선 올바르게 시행시키기 힘든 단순히 이상의 사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민주주의를 다양한 주제들과 접목시키며 글을 써내려가려한다. 혹여나 ‘민주주의’ 그것이 너무나 이상적인 사유라 할지라도 그것에 다가가려는 공론장을 형성할 때 사회는 분명 지금보단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가장 잘 실현시킬 수 있을까? 어려운 정치적, 철학적 사유들을 제쳐두고 당신에게 가장 밀접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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