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A와 B는 전공수업에서 같은 조로 편성되어 함께 과제를 하게 되었다. B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지 않아 반드시 A의 컴퓨터를 사용해야 과제를 할 수 있었다. A는 컴퓨터만 제공한 후 실제 과제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모든 과제는 B가 홀로 하였다. 이 때, A와 B가 같은 점수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일까? 더 나아가 A의 점수가 훨씬 더 좋았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이 같은 상황이 옳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컴퓨터를 소유한 A를 자본가에, 과제를 수행한 B를 노동자에 대입해보자. 당신의 대답은 여전히 똑같은가?

칼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불평등한 구조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근본적 불평등 구조를 지적하고, 그 문제를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체제를 제시하였다.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이다. 흔히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의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최초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라고 하면,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실패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앞에 굴복한 오늘날이야말로 ‘역사의 종언’ 때이다.” F.후쿠야마가 그의 저서 『역사의 종언』에서 결론지었던 것처럼, 우리는 사회주의는 실패했으며 자본주의가 가장 진보한 체계라고 성급히 결론지었다.

그것은 정말로 성급한 결론이었다. 2011년 한해를 뜨겁게 달군 월가점령시위를 기억하는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월가시위는 미국, 캐나다 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점령시위의 형태로 진화되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세계적인 시위에 원인으로 바로 ‘분노(Anger)’를 뽑았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노’, ‘글로벌 앵거(Global Anger)'의 시대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역사의 종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종언’을 말한다.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자기 몫을 착취당한 분노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이다.

2011년에 불거졌던 세계의 ‘분노’는 2013년이 된 지금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 가라앉았다가 아니라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 세계의 분노는 분출되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적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을 뿐이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우리는 마르크스와 그의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상이 가진 분명한 문제점과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최초에 가졌던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의문과 성찰은 이 글로벌 앵거의 시대에 분명한 가치가 있다. 민주주의의 실현, 그리고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우리는 사회주의를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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