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시초인 아테네 민주주의는 정치의 전개과정이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에 의해 조종되어야 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그 발원에서부터 공적 사안들에 대한 인간들의 자유롭고 능동적인 토론에 의존하는 정치체제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대 이후의 민주주의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대의민주주의의 형태를 가졌고 의사결정방식으로는 다수결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진정 민주주의인가에 대한 오랜 비판과 갈등이 있어왔다. 국민의 대리자인 정치인들이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협한 이익만을 추구한다던지,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고 옳지 못한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적 방안으로 숙의민주주의가 등장하였다.

숙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수결이나 투표가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해 토론하고 함께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모든 정치적결정이 ‘숙의’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숙의’는 ‘깊이 생각하여 충분히 의논함’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정치과정으로서 ‘숙의’는 이에 참여하는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정교화하고 자신의 이익을 표명하는 경쟁적 과정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참여자들이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며 상호 협력하는 구성적 과정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의 모든 갈등 및 문제들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어떤 전문가들도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내거나 문제에 대해 정답을 내릴 수 없다. 이제 이러한 모든 사안들은 정치적 담론으로 형성된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한 합의와 공론의 장 형성을 통한 숙의민주주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문제 해결의 동력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라 숙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실현 과정에서 한계점을 보완하고, 현대 사회의 복잡한 사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형태이다.

그런데 숙의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한 대안인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대화와 공론의 장을 통한 문제해결을 지향하지만,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대화를 끝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모든 참여자들이 동등한 발언권과 영향력을 갖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의심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고 ‘숙의’를 행하는 과정이 있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평등한 참여를 위해서는, 사회 내부 권력에 의한 제도가 우선되어야만 한다. 한마디로 너무 이상적이고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권력의 불균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대화를 통해 공론을 형성하고,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상적인 형태의 숙의민주주의를 상정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숙의의 공간인 공론장을 반드시 합의를 창출하는 기제로 전제하거나 다양한 의견과 입장의 인위적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양성의 공존과 상생을 지향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모형이자 공동 성찰과 상호 이해를 촉진하는 세련된 민주적 절차로 이해한다면 어떨까?

민주주의는 본래 ‘공중’ 또는 ‘인민’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다양한 갈래로 민주주의가 뻗어나가면서도 대중 또는 시민의 참여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기대는 항상 공통적이다. 숙의민주주의야말로 대중과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비판도 그 궁극적인 의미를 비판할 수는 없고, 오히려 구체적인 정책 수립 방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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