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을이여 단결하라!” 이렇게 외친 이는 없다. 그렇지만 ‘갑을관계’의 구조적 문제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또 행동했다. 포스코 상무와 남양유업 직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등. 이들 갑의 횡포가 대중적 분노를 산 까닭은 단순하다. 남의 일이 아니었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갑을관계’는 낯설지 않다. 대학, 기업, 정부는 명실상부한 갑이다. 입학금, 등록금을 군말 없이 학교에 내야 한다. 학교의 일방적 행정에도 속수무책이다. 교양과목 폐지는 약과다. 학사 구조조정으로 설립 3년 만에 폐과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남일 같지만 2008년 우리학교 문과대에서 벌어진 실화다. 대학을 떠날 때가 되면 새로운 갑이 군림한다. 기업이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스펙을 쌓을 수 있다면 최저임금은커녕 무급인턴이라도 발 벗고 나서는 현실. 공채기간 복잡하고 까다로운 전형에 성실히 참여해야 한다. 탈락하면 한달 가량을 낭비하지만 하소연 할 곳은 없다. 다행히 취업에 성공했다고 치자. 회사 최 말단. 돌림노래마냥 도로 ‘을’이다.

‘88만원세대’ 또는 ‘삼포세대’로 불리는 우리 을의 비극.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갑과 을 사이의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방법은 참여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우리’에 의한 지배가 가능하다. 정파적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 보편적 가치라 여기는 민주주의의 발전 배경이 이와같다. 민주주의는 ‘을’의 참여, 그 폭을 넓히며 권리를 확대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제의 해결 주체는 우리여야 한다. 산업화 세대를 대변하는 정당이나 민주화 세대가 주축이 된 정당의 몫이 아니다.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해주리라 기대해서도 안된다. 작은 변화일지언정 우리가 주도해야 채무 없는 우리의 힘이 된다.

우리 을이 참여해 힘을 키우자.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과거 4.19와 5.18, 그리고 6월 항쟁을 주도한 학생들이 존재한다. 프랑스에서는 68혁명 이후 대학 서열제와 등록금이 폐지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청년 을의 힘은 성장 중이다. 청년당과 청년유니온의 탄생. 그리고 반값등록금 운동이 선례다. 반값등록금은 현실이 되지는 못했지만 정치권의 의제 수용, 등록금 동결 및 인하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실천은 어렵지 않다. 당장에 6월1일, 반값등록금을 촉구하는 대규모 대학생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집회가 아니더라도 참여의 길은 많다. 학생총회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는 방법. 학교나 국가라는 ‘갑’의 횡포에 맞서 진행 중인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일. 학생회에 가입하거나 학생자치기구가 ‘을’을 위한 일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

선례는 충분하다. 숱한 선배 ‘을’들이 앞서서 나갔다. 이제 우리가 따르며 힘을 키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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