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개인화로 물든 사회에서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 나에게 있어서 그 순간은 ‘농활’이었다. 지금까지 갔던 네 번의 농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농활은 작년 봄에 간 경북 영천에서의 농활이었다. 그곳에서 농활의 의미가 ‘농민학생연대활동’임을 알게 됐다. 처음 그 의미를 들었을 때 ‘연대’라는 개념은 막연하기만 했다. 연대란 우산을 씌워 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라는데, 농활에서 어떻게 그 느낌이 전해져 올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처음 접해 본 밭 일은 나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20대 건장한 청년들도 끙끙대며 하는 농사일을 최소 연령 60대이신 농민 분들이 해내시는 것을 보고 경험은 속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몸이 고단하시지는 않은가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날 밤은 그곳의 형님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요지는 안 그래도 농산물의 제값을 못 받으시는데 시장개방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는 것이었다. 비료이야기부터 직판장 이야기, 아들 딸 이야기까지, 이야기를 하시는 동안 그 형님의 삶이 마음에 꽂혀 왔다. 학교에서 글로만 접했던 농촌 현실이 비로소 피부로 닿아오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 다시 밭일을 나갈 때는 농민에 대한 안타까움 보다는 이렇게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농사일이 그 놈의 ‘돈’ 때문에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황이 내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계속된 밭일과 농민 분들과 대화를 몇 번 하고 나서야 농촌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농활이 끝나고 나서 느낌이 왔다. 비를 함께 맞는 것, 그것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공부를 통해, 밭일을 통해, 대화를 통해 농민들의 고단한 삶을 직접 느끼는 것, 그것이 농활이었다.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으신 농민 분들은 우산을 씌어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야하는 대상이라 느끼는 순간이 연대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는 때였다.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기에도 바쁜 삶에서, 내 옆의, 나아가서는 내 삶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까지 둘러볼 여유가 많지 않다. ‘연대’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기회는 더더욱 적다. 하지만 농활에서는 가능하다. 농민의 고단한 삶을 느낄 뿐 아니라 함께 부대끼며 농민과 학생이 서로의 문제를 듣고 “힘들겠다, 이해한다.”하는 순간 문제의 해결점이 조금씩 나타나는 것. 그것이 농활의 기쁨이고 연대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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