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첫 남자친구가 양다리였음이 밝혀지고 그와 이별을 선언한 친구가 술에 취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사랑이 뭘까?’

사랑.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듯한 달콤함도, 세상이 끝장나버릴 것 같은 씁쓸함이 혼재된 단어이다. 사람이 이천팔백오십구명이 있다면 사랑에 대한 정의도 아마 이천팔백오십아홉가지쯤 되려나.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종족번식을 위한 온 인류의 착각이라는 관점,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등 호르몬의 장난이라는 관점에서 에리히 프롬, 알랭 바디우등의 온갖 철학적 담론들, 아는 오빠의 진부한 연애담까지. 아이구 머리야.

우리는 하룻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대략 어느 지방 소도시 인구와 맞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 모두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물론 동성애자들도 포함하여). 하지만, 만남이 지속되어가며 호감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고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을 보통 ‘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끔 이러한 상태에 의구심을 갖게 될 때가 있다.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나라고 여겨지는 다른 ‘조건’을 사랑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무(無)조건적 사랑은 누구나 품어보았을 로망일 것이다. 플라토닉 러브.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하지만 아무리 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하는 거라지만 세상은 그렇게 이데아적이지 못해서 푹신한 쿠션인 줄 알고 안았던 사람이 까칠까칠 나를 아프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자꾸만 머리가 아파지게 된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하면 한가지는 그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감, 그리고 현실적인 조건일 거에요. 하지만, 저는 그런 조건으로 어필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 모습만 보았으면 했어요. 제가 가진게 아닌… 지금은 가진 것도 많이 없지만, 설령 그 것이 없어져도 저를 믿어주고, 당신을 믿고 살아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져주길 바랬습니다.

마냥 눈 감고 귀 닫고 사랑밖에 난 몰라- 하며 도망치라는 말이 아니다. 한꺼풀, 두꺼풀씩 벗겨지는 조건에도 사랑한다는 믿음. 함께 하면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쉬잔 발라동. 1880년대 빠리 몽마르뜨의 수많은 화가들의 뮤즈였던 여인. 하지만 세탁부의 사생아인 그녀는 수많은 화가들이 귀족적 여신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을 터. 자신의 외모에만 집착하던 여타 화가들과는 달리 내면을 마주하고 그리는 뚤루즈 로뜨렉과 연인이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1880년대 인상주의 화가들의 뮤즈였던 수잔 발라동. 발라동을 여신으로 추앙하는 움직임은 르누아르를 시작으로 열병처럼 번졌다. 하지만, 뚤루즈 로뜨렉만은 그녀의 초라한 등을
그리며 세탁부의 사생아 출신의 보잘 것 없는 그녀를 솔직하게 들여다 본다. 르누아르의 연인이었던 수잔은 그녀를 여신처럼 묘사하던 그를 버리고, 키도 작고 볼품없는 로뜨렉을 선택한다.

함께하며 더 없이 나 자신에게 솔직해 지는. 연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사랑’. 지금. 사랑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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