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부터 건대입구역 1번 출구에서‘빅 이슈’를 판매하던 ‘빅판’이 사라졌다. 매번 신간 잡지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재활하려는 노숙자들의 기분 좋은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일어나기 매우 힘들지만 다시 생존을 위해 투쟁하던 그들의 모습이 사뭇 그리웠다.

빅판 뿐 아니라 세상사는 우리 모두는 오만가지 사연을 뒤집어 쓴 채 거친 세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7일, 비상시국대회에서 만난 장애인들도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또 노점상을 운영하다 쫓겨난 상인들,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로 갈 곳이 없어진 세입자들과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에다 삶의 터전에 송전탑이 들어서는 지역주민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만은 않았다. 지나가는 노인들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북한에나 가지’란 수군거림도 있었고 ‘종북좌파 물러나라’란 극우단체의 맞불집회도 있었다. ‘국민 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를 가지는 순간‘종북좌파’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벌어진 희극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다시 말해 생존을 위해 나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을 우린 권리에 대한 주장이라고 부른다. 그 주장들이 한데 모였을 때 그것은 집회, 타인들의 집회에 힘을 실어줄 때 그것을 연대라고 부른다. 그 연대가 모여 세상을 바꿔왔다. ‘불의’가 ‘의’로 둔갑하던 시절, 수많은 연대는 4.19와 5.18, 6월 혁명을 만들어냈다. 멀게는 프랑스 시민혁명과 얼마 전 넬슨 만델라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까지 만들어냈다.

헌데 최근 들어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함은‘피곤한 사람’인 모양이다. 그래, 무념무상, 바쁜 인생 살아가는데 참으로 편안한 자세다. 생각과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스트레스도 찾을 수 없다. 고민이 있다면 취직과 직장생활, 시험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스트레스겠다. 그나마도 왜 업무와 상관없는 스펙을 요구하는지, 왜 220문제를 가지고 나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지에 대한 고민하면 ‘이상한 놈’이란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취직, 시험 같은‘룰’도 결국은 기존의 제도다. 과거 신분제가 있던 시절,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던 시절엔 억압받던 이들의 개인적 고민은 없었을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각종 제도에 대해 순응하고 이에 맞춰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면 앞에 말했던 ‘혁명’은 물론 ‘인권’에 대한 역사는 존재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 민주주의란 것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수 있고 선택의 가능성이 다채롭게 열려있는 사회다. 그러나 그 민주사회란 한국사회가 개인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것부터 가로막으려 한다. 개개인들조차 가로막힌 사회분위기를 이미 체득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기본적인 권리행사부터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다. 겁먹지 말고 이야기 하라. 소외된 모두가 왼발을 내디딜 때, 더 나은 세상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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