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이란 병원내 간호사들이 신규간호사를 군기 잡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생명을 구해야하는 간호사들이 자행하는 ‘태움’은 군대의 ‘갈굼’을 방불케한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는 특성상 태움은 ‘단지업무상의 과실에 대한 지적일뿐’이라며 매년 신규간호사들이 속수무책으로 ‘태워’지고 있다. 간호학과 교수나 간호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움을 당해 본 사람이 더 잘 태운다는 말처럼 태움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태움,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

○○대학 간호학과 졸업반 망설임씨의 고민
그토록 기다려 왔던 ‘백의의천사’가 될 수 있는 지금, 난 왜 주저하는가.

이제 임상실습이 끝나가고 있다. 내년이면 바로 취업준비에 들어간다. 그러나 병원에 지원할 생각하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여러 병원에서 실습을 했지만 어느곳에서나 내가걱정하던 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간호사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태움’이다.

간호대학에 들어오면서 처음 접해본 단어 ‘태움’. ‘재가 될 때까지 태워버린다’라니… 서늘함을 느꼈다. 생명존중과 인간사랑에 대한 경건한 맹세를 한 간호사들이 생명을 태우려고 한다는 것이 정말 모순이었다. 태움은 주로 신규간호사들이 병원에 갓 입사해 일을 배우는 시기에 일어난다. 병원 내 선배간호사들이 신규간호사에게 폭언, 폭행도 모자라 왕따까지 시키기도 한다.

태움의 방법도 가지가지다. △얼차려 △정강이차기 △인격모독 △환자앞에서 모욕주기 등 군대를 방불케한다고 한다. 선배들은 태움당하지 않으려면 손이 빠르고 눈치가 빨라야한다고 당부했다. 또 선배나 교수님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니깐 처음 딱1년만 잘 버티면 된다고 조언했다. 예전부터 태움의 심각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스스로 다짐했건만 막상 코앞에 닥치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간호학과 군기도 견뎌내기 벅찼는데 간호학과 군기는 태움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하니…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특히 손이 느리고 배움이 더딘 신규간호사가 태움의 표적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난 다른 사람보다 어떤 기술이나 업무 등에 숙련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래서 학부생 때도 붕대감기 등 의료기술을 익힐 때마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대론 태움의 표적이 될 것만 같다.

며칠 전, 한해 빨리 취직한 선배의 사직소식을 들었다. 그 선배는 누구나 다 안다는 S대학병원에 취직했지만 결국 태움을 견디지 못하고 1년만에 사직서를 낸 것이다. 선배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이 지옥같은 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정신질환에 걸려버릴 것 같았다”고 울먹였다. 선배는 업무과실지적으로 호되게 혼나는 것은 이해라도 가지만, ‘네 웃음소리가 역겹다’, ‘살 좀 빼라’ 등의 인격모독과 그러한 이유로 맞을 때마다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가 특수한 것만은 아니다. 간간히 사직 또는 이직을 했다는 선배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태움은 학생들 대부분이 가고 싶어 하는 이름난 대학병원, 기업병원에서 더욱 심하게 일어난다고한다.

난 지금까지 간호사를 꿈꾸고 보다 좋은병원에서 일하는 것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매일 공부만 했다. 그 결과 총학기 평점 4.43이라는 높은 학점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임상실습에 들어가서는 매일 하루8시간 이상씩 서있었다. 간호사가 되면 이보다 더 심한 육체적 노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다. 지금 간호사가 되기 위한 모든 과정을 마친 나는 막상 그 문턱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하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의 경건한 마음과 간호사가 되겠다는 ‘다짐’. 하지만 연이어 백의의 옷을 입은 내가 백의의 옷을 입은 6~7명의 간호사들로부터 입에 담을 수없는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가슴이 먹먹하다.

*본 기사는 예비간호사인 간호학과 학생들의 취재를 바탕으로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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