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며 잘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사랑이다. 이때 주목해야할 점은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한 사람과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그럼 동시에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에 대한 화두를 던진 작품이다. 당당한 불륜.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소재, 그리고 결국에 남편 둘과 아내 하나가 화목한 모습을 보이는 결말에 대해서 서슴없이 비난을 날린다. 그러나 그들의 비난에 어떤 합당한 이유가 없다. 그저 ‘쓰레기’라 칭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이런 비난이 과연 그들의 머릿속에서 논리적인 사고를 거쳐 나온 것일까? 어릴 적부터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화의 일부분은 아닐까? 영화를 ‘쓰레기’라 칭하면서 자신은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그런 말을 통해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런 것을 소재화한 영화를 본 것 자체가 이미 폴리아모리라는, 우리 사회에서 자극적인 소재에 어느 정도 끌린 것이다.

독점적인 연애. 결혼.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어진 배타적 사랑이 과연 두 사람 사이를 긴밀히, 오래 유지시켜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에 한 평론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작품이 말하는 낯선 결혼관이 불편하면서도 한편 유쾌한 이유는, 독점적 연애와 일부일처제가 사랑을 지속시키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행복을 억압하는 기재로 쓰이는 모순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다자간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경우, 그들을 불순하게 보며 사랑이라는 말 대신 욕망, 욕심이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되, 그들에게 전부 똑같은 사랑을 느끼고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에게는 보다 많은 사랑이, 다른 한 쪽에게는 보다 적은 사랑이 주어진다. 사랑을 수치화해 서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발상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사랑을 주는 것을 바라는 것 또한 웃긴 일 아닌가.

그러나 한 번에 여러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어떤 한 사랑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이 오랜 사랑을 유지하는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러한 메시지를 인아의 대사 속에 녹여냈다.

‘나 오래오래 자기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 근데 평생 자기만 사랑할 자신은 없어. 사랑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생각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실제로 자신에게 <아내가 결혼했다>와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사회 속에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있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 동시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라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마치 한 사람을 만나 지고지순함을 보이는 게 미덕인 듯 여겨지지만, 그 또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실제로 그런 사랑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사회 속에서 그러한 사랑을 완전체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도 있겠지만, 그런 사랑이 실제 몇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 더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하는 사랑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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