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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가는 거라면 말리고 싶어요”‘12.13 전쟁반대 공동 행동의 날’ 파병반대 목소리
양윤성 기자 | 승인 2003.12.21 00:00
두텁지 않은 옷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추워진 날씨. 정부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한껏 높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대학로에 모였다.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모인 대학생들과 강제 추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중동지역의 반전 시위대들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모여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항의하는 날을 맞아 ‘이라크 점령 반대’, ‘한국군 파병 계획 철회’를 외치며 마로니에 공원으로 모였다. 

“아빠의 죽음은 어쩌면 예정됐던 일”

“전쟁은 우리들의 생존권과 직결”

행사가 시작하자 최근 개봉한 <올드보이>로 유명해진 박찬욱 영화감독이 발언하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박 감독은 “68년 베트남 전쟁 때 반전이라는 세계적 여론을 양심 있는 지식인과 노동자,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만든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재현해야 한다”고 파병반대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번 기회를 개개인의 이기주의와 탐욕을 극복하는 계기로 삼자”고 다짐했다.

때마침 하얀 상복을 입은 소녀가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단상을 오르자 주위가 숙연해진다. 그녀는 지난 30일 전후복구사업을 위해 이라크에 갔다가 테러에 희생된 고 김만수씨의 딸 김영진(18)양. 쌍둥이 딸들의 등록금을 벌겠다고 갔던 아버지는 핸드폰 사진 속의 따뜻한 웃음을 마지막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김양은 “아버지는 회사에서 약속했던 미군의 경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연일 안전하다고 선전하던 회사와 언론을 원망하면서 “위험한 현지로 내몰린 아빠의 죽음은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다”라며 “더 이상 무고한 생명의 희생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집회의 열기에 추위를 녹이고 있을 때, 단상 밑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정재욱 한총련 의장이 보였다. 현재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라크 전쟁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침략전쟁이며 한반도의 핵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우리의 생존권도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지금 우리들의 친구, 선후배 등 대학생들의 생존권과도 관련된다”며 반전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전쟁은 없어져야”

“파병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뒤따라야”

집회에 참여한 이상규(광운대․국제통상2)군은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촛불시위에서 보여 주듯 국민들이 하나로 뭉쳐서 보여줘야 한다”며 “시민들이 한 마음 한 자리로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재희(연세대․경제2)군도 “이라크 인들의 인권을 돈과 기름으로 맞바꾸는 신자유주의적 전쟁은 있어서 안 될 일”이라고 말하면서 뜻 깊은 행사에 보람을 나타냈다.

반전집회가 모두 끝나자 사람들은 공원에서부터 탑골공원 앞까지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 높여 도로를 점거하며 행진하자 어떤 사람들은 시위대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종로 방향으로 행진하면서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를 지켜보던 백민식(30)씨는 “파병문제는 즉흥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로 국민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하면서 “민주사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로를 막고 행진하는 것은 안 좋아 보인다”며 비판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목숨이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건 나쁘게 보여요”라고 말하는 구혜은(동국대․국어교육1)양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며 행진 중에 시민들에게 전쟁의 부당성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줬다.

“집회, 사람들이 모여 얘기하는 것에 해방감”

시위가 끝날 때까지 파병 반대 피켓을 들고 있던 천경록(25․고려대․법학3)군은 “언론이나 정부, 어디에서도 파병반대라는 당연한 요구를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며 “오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해방감을 느낀다”고 행사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탑골 공원 앞에서 모든 행사가 끝나자 많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구석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있는 김영진(18)양이 눈에 띄었다. “돈 때문에 가는 거라면 정말 말리고 싶어요. 더 이상 저희 아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울먹이는 김양. 그녀에게 이라크는 더 이상 언론이나 정부의 말처럼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양윤성 기자  yoon8383@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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