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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민주화 운동 기념행사, 세월호 희생자들 추모행렬도 함께 진행
박지수 기자 | 승인 2014.05.19 23:51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 후 한 달이 지나고 우리는 5월 18일을 맞이했다. 올해 5월 18일은 세월호 참사의 끝나지 않은 슬픔이 더해져 한층 사람들의 마음을 애달프게 했다. 5ㆍ18민주화 운동을 기리기 위해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청년건대, 그리고 여러 진보단체들이 광주로 모였다. 이들은 전두환 군사정권에 희생된 광주 시민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망월동 구묘지, 국립 5ㆍ18민주묘지 등을 찾아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또 당시 공수부대에 맞서 싸웠던 시민군의 마지막 행렬을 재현하며 시민군들의 굳은 의지와 희망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새겼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단원고등학교(단원고) 학생들을 추모하는 꽃 영정 행렬이 이어졌다.

 5ㆍ18 묘역에서 만난 민주열사들과 무고한 희생자들

   
▲ 이한열 열사의 묘비

 

  망월동 구묘지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당당히 목숨을 바친 민족민주열사들의 묘비가 대다수 안치돼 있다.

이한열 열사는 1966년 8월 29일 출생으로 광주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결의대회'에 참석해 시위하는 도중 연세대 정문 앞에 있던 경찰이 쏜 직견 SY-44채류탄에 피격당했다.

망월동 구묘지를 찾은 우리대학 한 학우는 “경찰이 바로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태에서도 민주주의를 다짐했던 이한열 열사가 정말로 존경스럽다”고 전했다.

 

  

   
   

▲ 우리대학 학우들이 망월동 구묘지에서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 군사정권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민족민주열사와 5.18유공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춤사위를 보이고 있다.

   
 

 

 

 

 

 

 

 

 

 

 

 

 

   
 
   
▲ 전두환를 풍자한 일러스트

 한편, 전두환 군사정권의 계엄령 하에 자행된 광주시민 학살로 인한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사망자 218명, 행방불명자 363명, 상이자 5,088명 기타 1,520명으로 총 7,200여명에 이른다. 특히 공수부대들은 어린이, 청소년, 임산부 등에게도 예외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두부철너의 젖가슴” 이는 「5월의 노래」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공수부대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姑손옥례씨의 이야기다. 그의 사망원인은 좌 유방부 자창, 우측 흉부 총상, 하악골 총상, 좌측 골반부 총상, 대퇴부 관통 총상, 우 흉부 관통 총상이었다. 그는 1980년 5월 19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중, 외출이 잦다는 이유로 아버지께 심한 꾸지람과 매를 맞았다. 이후 그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시내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간다는 말만 남기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계엄군이 물러나길 기다렸다가 그를 찾아 헤맸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소문 끝에, 검찰청에 사망한 사람들의 신원정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그의 오빠 손근섭 씨는 5월 27일이 지나서야 광주지방검찰청으로 향했다. 그곳엔 신원불명의 사망자들을 검시 할 때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 중에 그가 있었다. 그는 좌유방부 자창, 가슴이 잘려나가 있었다. 그는 국립 5ㆍ18민주묘지에 안치됐다. 그의 사례는 공수부대의 극악무도함을 잘 보여준다. 증언에 따르면, 당시 공수부대원 2명은 ‘누가 더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가’로 힘겨루기를 했고 마침 지나가던 여고생 姑손옥례 씨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잘라버렸다. 그는 그들의 손에 무참히 희생당한 것이다.한편, 전두환 군사정권의 계엄령 하에 자행된 광주시민 학살로 인한 피해자는 공식적으로 사망자 218명, 행방불명자 363명, 상이자 5,088명 기타 1,520명으로 총 7,200여명에 이른다. 특히 공수부대들은 어린이, 청소년, 임산부 등에게도 예외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 국립 5.18 묘역
   
▲ 姑전재수 씨의 묘

 

  또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한 아이가 군인들의 총에 희생당했다. 그 아이는 국립 5ㆍ18민주묘지에 안치된 姑전재수 씨다. 1980년 5월 24일, 계엄군이 도청을 함락시키려는 충정작전을 위해 광주비행장으로 이동하던 날이었다.

 

 

   
 

 

 주남마을에서 광주와 화순 간 도로를 차단해 봉쇄작전을 수행하며 인명피해를 냈던 11특전 여단과 7특전 여단은 명령을 받고 송정리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대열 선두에서 보병학교의 교도대 병력과 오인 사격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뒤 따르던 11특전 여단이 무차별 총격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때 전재수 씨도 총에 맞고 말았다.

벗겨진 고무신을 주우러 돌아섰던 그는 허리에서 대퇴부 사이에 여섯 발 이상의 총알을 맞았고, 배와 다리 사이가 만신창이가 돼 즉사하고 말았다. 

 

 

 

 

 시민군의 의지를 가슴 깊숙이!
 군부독재에 맞서 금남로를 걸어갔던 당시 시민군들의 행렬은 매년 5월 18일에 재현된다. 이는 5ㆍ18민주화 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17년째 이어져 온 전통적인 행사다. 그러나 올해 재현 행렬은 지금껏 해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바로 한 달 전, 온 국민의 마음을 애달프게 했던 세월호 희생자들 추모행렬을 함께 진행했기 때문이다.

   
▲ 전국에서 모인 한대련 학생들이 시민군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 전남대 학생들이 붙이 '민주주의 수호' 현수막
   
▲ 재현 행렬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한 대련과 여러 진보단체들은 시민군 재현 행렬을 하며 금남로를 향했다. 곧 금남로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 영정을 든 고등학생들과 합류했다. 이들도 고등학생들처럼 꽃 영정을 들고 미리 마련해둔 분향소를 향해 행진했다. 이들이 가는 걸음걸음 마다 애도의 물결이 흘렀다. 이번 행렬에 참가한 상경대학 2학년 이모 학우는 “5ㆍ18민주화 운동을 기리기 위해 참석했는데, 세월호 추모 행렬에 함께 할 수 있어서 뜻 깊었다”며 “단원고 학생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고등학생들이 꽃 영정을 들고 슬퍼하고 있다.
   
 
   
▲ 학생들이 가져온 꽃 영정을 분향소에서 안치하고 있다.

 

 

박지수 기자  rhehf333@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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