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향수 키스말고

이번에 성년의 날을 맞으신 94, 95년생 분들은 꿈에 그리던 성년의 날을 맞으셨나요? 성년의 날은 장미꽃과 향수, 그리고 키스를 선물로 주는 특별한 날이죠? 특별한 선물인 만큼 모두 특별한 날을 꿈꾸게 되는데요. 이번 사연은 성년의 날을 맞아 특별한 날을 꿈꿨지만 특별하지 않게 보낸 한 학우분의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오랫동안 성년의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오죽했으면 대외활동으로 하고 있는 기자단에서도 성년의 날을 기념하는 기사를 쓸 정도였을까. 그렇게 난 내가 맞이할 성년의 날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도 궁금하고 설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아침부터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선물받은 향수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숙사에 사는 나로썬 부모님께 받은 선물들을 나열하며 ‘꺄, 제가 성인이에요. 여러분.’하는 게시물이 참으로 부러웠다. 그래도 내가 대학생활을 허투루 보낸 것은 아니었는지, ‘다행히도’ 점심 때 평소 친한 선배에게 예쁜 장미꽃을 선물 받았다. 또 나 자신도 성년의 날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인 <인간중독>을 야심한 밤에 성년의 날을 맞은 동기들과 함께 보러가기로 약속한 것이다. 성년의 날이니까 이런 영화는 꼭 봐 줘야 한다고 자부하며, 특별한 오늘을 만들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로 가혹했다. 제일 어려워하는 수업에서 시험을 일주일 앞당기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과 함께 찾아온 밀린 동아리 일까지. 야호! 6시 이전부터 9시까지 동아리 방에 꼼짝없이 갇혀 일을 끝냈다. 게다가 성년의 날을 맞이한 근사한 저녁식사가 아닌 기숙사 김밥천국을 찾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마저 나는 처량했다. 저녁으로 먹을 일반 김밥을 주문했는데, 현금이 없어 카드결제가 되는 3000원짜리 돈까스 김밥으로 재주문했다. 하지만 이것이 김밥천국 아주머니를 화나게 만들었던 걸까. 얇디얇은 김 안에 흰 쌀, 그리고 돈까스 한 줄만이 전부인 정말 ‘돈까스’ ‘김’ ‘밥’을 가지고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김밥천국 아주머니가 싸주신 정성스러운 돈까스 김밥은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고, 결국 체한 나는 눈물을 머금고 <인간중독> 약속을 취소하고야 말았다. 이제 남은 일과라곤 홀로 쓸쓸히 잠에 드는 것뿐.

여기까지가 나의 비극적인 성년의 날에 대한 기록이다. 성년의 날, 인생에 단 한번뿐인 날이기에 특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나는 매 순간 역시 단 한번 뿐이지 않나. 성년의 날이 지난다고 내가 성숙미 발산하는 어른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애써 자기 위안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면 당신은 예리한 성인!

일년 중 하루일 뿐이지만, 성년의 날은 우리가 특별하길 기대하는 날입니다. 사연 속 주인공은 아프기까지 해서 더욱 속상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성년의 날’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가 성년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어엿한 성년이 됐고 성년답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성년이 된 걸 축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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