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영상으로 담은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둘은 너무나 감정이 격해서 서로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냉랭한 갈등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것인가 방법조차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격렬한 적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너무 방치해서 그동안의 인생살이가 너무나 힘겨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듯 자식의 하루하루의 삶을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저렇듯 도망치려고만 하고. 그런데 만약 이 아버지의 아버지가 역으로 자신의 삶을 강하게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자신의 아들이 그랬듯 자신 또한 아버지의 말에 극단적으로 반발하며 심지어 집을 뛰쳐나가는 경우까지 생기지는 않았을까. 설사 아버지의 말을 잘 들어서 살아갔다 해도 과연 그가 자기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다고 자부하게 될 것인가. 그와 반대로 그 삶이 너무나 좁디좁거나 아니면 남의 인생, 즉 아버지의 인생이었지 내 인생은 아니었다고 말하지는 않을까. 아버지가 방목(?)했기에 비로소 삶의 쓰라린 체험을 겪게 되었고 그로부터 인생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걸까.

결국은 자식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 길을 가다가 쓰러지면 그 누구도 그를 일으켜 세워줄 수가 없다. 좌절하고 절망할 바로 그때 그의 말없는 그 좌절과 절망을 조용히 읽고 같이 대화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자식과 아버지의 관계 방식이 세대가 바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가 않다. 문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데에 있다. 전세대가 성공을 꿈꾸는 시대였다면 현재는 행복을 꿈꾸는 시대로 바뀌었다. 그리고 전세대가 공동체 이념으로 지탱해 왔다면 지금은 개인의 이념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회의 견고한 관념들도 하나둘씩 붕괴하고 있다. 그 견고한 관념들은 기존의 공동체 사회의 가치들, 이를테면 위대한 민족, 가문의 영광, 일류 대학, 입신양명, 남성가부장문화 등등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적대시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도 어쩌면 이 관념들이 지배해온 이 사회 탓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사회의 이 ‘위대함’ 속에 어떻게든 자식을 무사히 세워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왜 위대함만 생각하고 그 뒤편에 춥고 어둡고 버려진 삶들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눈감으려 하는가. 자식을 놓아주는 것, 성공이 아니라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중심화와 동원의 공동체 문화에서 더불어 사는 개인으로 세워놓는 것, 성장보다는 복지를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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