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제 1 학생회관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3, 4, 5층에 연속으로 빨간 테두리가 켜져 있었다. 2층 을 향해 올라가던 순간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그냥 기다렸다가 다음에 오면 탈까?” 휠체 어에 앉은 여학우가 두 명의 친구들에게 소곤댔다. 결국 타기는 했지만 3층에서 내리는 한 학우로 인 해 휠체어를 탄 학우는 내렸다가 다시 타야 했다.

 

기술의 발전이 계속되는 한 ‘세상 참 좋아졌다’ 는 말은 아무리 시간이 흐른 미래라고 해도 계속 쓰 일 듯 하다.한 손에 들고 쓸 수 있는 컴퓨터는 인터 넷도 게임도 통화도 되고, 대신 필기하고 대신 기억 해주는 카메라도 있으며, 연락은 하기도 무시하기도 쉽다. 기술적으로 편리해진 세상 맞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고 누려야 할 편리함의 범 위는 어느 정도일까.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인류를 행복하고 품위 있는 삶으로 인 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말했다. 이를 통해 기술의 편리함에 대한 인식을 넘어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지, 그로인한 변화는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편리함에 대한 고민은 기술의 사용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나 철학, 삶의 태도에까지 직결된다.

 

지난 2012년, 제 1 학생회관 엘리베이터는 장애 학우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됐다. 엘리베이터 외에 다른 시설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편의보다는 필 수에 가까웠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학우들이 굳이 누리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위해 장애학우를 위 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편리함이 주는 만 족이 떠난 자리에 무엇이 남는가. 편리함이 주는 생활에 젖어 생각 없이 살다보면 나에게는 선택 남에게는 필수인 것을 어느새 내가 쥐고 있다.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절 실한 것을 내가 빼앗는다. 그리고 우리는 배부른 돼 지가 되어간다. 이는 강자가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기형적인 우리사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약자의 밥그릇까지 빼앗는 모습 이미 만연한데 대학에서까 지 볼 필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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