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행동론 시간에 배운 내용을 되짚으면서, 나는 얼마 전까지 학교 도로를 샛노랗게 물들였던 은행밭을 떠올렸다. 한동안 수많은 은행들이 사람들의 발에 밟힌 지뢰처럼 고약한 냄새와 함께 터져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가을 축제 때는 그 냄새 나는 바닥 위에 음식을 파는 부스들이 즐비해있었다. 축제의 신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들을 보며 하루 종일 은행 냄새를 맡았을 생각에 불쌍한 표정 또한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은행 터진 자국이 다 씻겨나가기도 전에 우리나라에는 올 가을 첫 얼음이 얼었다.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와 함께, 지독한 은행 냄새조차 잊게 했던 축제의 자리 맞은편에는 이제 삶의 모든 것을 내건 주차관리 노동자들이 천막을 세웠다. 차가운 바닥에 얇은 돗자리 하나를 깔고, 신발을 벗고, 마치 예전부터 그곳이 우리 집이었던 것처럼 그들이 누워 있는 것이다. 일감호 산책길 한편에서 그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TV에서 본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자의 모습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감호 앞에 걸린 거친 글씨의 플래카드가 찬 바람에 나부끼고 난 바로 그들이 SNS를 통해 보았던 우리학교 주차관리 노동자인 것을 알았다. 갑자기 불어 닥친바람에 천막 안에서부터 진한 향냄새가 훅 퍼져 나왔다. ‘한’의 냄새가 있다면 차가운 바람을 입김 삼아 지글지글 타고 있는 이런 냄새가 아닐까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학교와의 가벼운 마찰인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천막을 칠 정도였나 싶어 새삼 같은 캠퍼스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난 소비자행동론 시간에 사람의 감각 중 "후각"을 활용한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관해 배웠는데, 만약 폭탄처럼 떨어지는 은행 하나하나에서 지독한 냄새대신 이 진한 향냄새가 났다면, 바쁘게 지나치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반 걸음이라도 더 잡아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래카드 앞을 스쳐만 지나가는 눈길들에게 한 글자라도 더 기억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면 적어도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처럼, 마음만이라도 안타깝게 생각하며 관심을 보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그들의 아픔을 이 향냄새로라도 대신 전할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해왔지만 무관심하기만 한 학생들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천막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도, 학교에 직접 찾아가 항의를 하는 것도 아닌 이곳에 이런 글을 쓰는 것뿐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나의 글을 읽을 수 있음을, 그리고 이로써 나처럼 잘 몰랐던 사람이 알게 됨은 부끄러워하진 않을 것이다. 냄새 나는 땅바닥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물러나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더러운 바닥을 맨발로 밟고서는 집념의 향기는 향이 다 타고 난 뒤에도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