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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닌 달
김영철 (문과대ㆍ국문) 교수 | 승인 2014.11.24 17:03

1년 열두 달을 성격상 두 묶음으로 나눌 수 있다. 1,3,5,7,10,12월이 한 묶음이고, 2,4,6,9,11월이 또 한 묶음이다. 전자는 뚜렷한 특징이 있어, 모든 이에게 주목받고, 관심을 끄는 달들이다.

한 해의 시작으로 희망이 넘치는 1월, 새봄과 함께 생명의 축제가 열리는 3월, 계절의 여왕이요, 가정의 달로 분주한 5월, 바캉스로 들뜨는 청춘의 달 7월, 온갖 행사로 뒤덮힌 문화의 달 10월, 연말연시로 분답한 12월. 하지만 후자는 웬지 소외되고, 특징이 없는 달들이다. 계절적 색채도 뚜렷하지 않고, 사회적 행사도 드문, 조용한 달이다. 그저 이도 저도 아닌 달력에만 그려져 있는 어정쩡한 달이다.

11월 역시 뚜렷한 계절적 특징도 없고, 화려한 이미지도 없다. 온갖 행사로 넘치는 10월과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로 들뜬 12월 사이에 끼어있는, 그냥 뛰어 넘는 통과의 달, 말하자면 정체성이 없는 달이다.

하지만 나는 11월을 사랑한다. 화려하지도, 뚜렷한 특징도 없는, 그래서 소외되고, 방치된 달이라 어떤 연민을 느낀다. 다중에게 주목받지 못한 것에 대한 연민과 애착, 일종의 마이너리즘(minorism)의 심리가 작동한 것인지 모른다. 인간은, 특히 현대인은 화려하고, 현란한 이미지와 욕망에 열광한다. 모든 이에게 주목받고 싶고, 뚜렷하고 가시적인 가치창조에 투신한다. 하여 미미하고 하찮은 대상들은 아예 소외되고, 외면받기 일쑤다.

하지만 11월이 갖는 이미지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크고, 높고, 빠른 것’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가치정향에 맞서, ‘작고, 낮고, 느린 것’을 추구하는 시 노래 모임, <나팔꽃 >동인의 이념도 11월을 닮은 생활철학이다. 작은 것, 낮은 것, 그리고 늦은 것이 진정 삶의 행복이요, 인간의 축복인지 모른다. 하찮고, 사소하고 ,소외된 것에 진정한 삶의 진리와 가치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타버린 연탄재에서 사랑의 열정과 헌신적 가치를 노래한 안도현의 <연탄 한 장>은 이러한 삶의 철학을 말해준다. <서편제>의 고향 청산도가 ‘슬로우 시티(slow city)’로서 각광받고 있는 사회적 현상도 11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11월을 닮은 섬, ‘청산도’, 그곳에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과 시세계를 지향했던 백석 시인도 11월을 닮은 시인이다. 외롭고 쓸쓸한 것에서 깊고, 높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버려지고, 소외되고 방치된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trivialism), 그것이 11월이 주는 진정한 삶의 의미이다.

11월은 겨울을 준비하는 달이다. 나무들도 일제히 잎새를 떨구고, 겨울을 준비한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선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할진대, 나무들은 왜 저렇게 잎을 떨구는 것일까. 겨울 앞에서 잎새를 떨구는 모순의 행동은 우리에게 역설적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겨울이라는 혹독한 상황과 잔인한 현실을 이겨내는 것은 오로지 가식을 버리고 진실로 맞서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자세로사회에 맞섰던 김수영의 시의 외침이 겨울나무에서 들린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절규하던신동엽 시인의 목소리도 겨울나무를 닮아 있다. ‘맨몸’으로, ‘알맹이’로 거친 시대를 헤쳐가던 앙가쥬망의 외침이 11월의 나목에서 들리는 듯하다. 우리모두 겨울나무를 닮아 가식과 허위, 위선의 껍데기를 벗어야 할 일이다.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닌 달’이라고 명명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기에, 아직 마무리할 시간과, 완성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1년 중 마지막 단계에 쫓겨있는 달이긴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달이다. 문과대 앞 목련들은 꽃망울을 준비해 놓고, 꽃이 만개할 봄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 공원 다람쥐도 도토리를 주워모아 겨우살이를 준비해 놓았다. 한갓 자연물도 그러할진대 우리도 추운 겨울을 나고 새봄을 맞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2014년 한 해를 보람있게 마무리하여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보람찬 한 해의 의미 있는 마무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11월은 아직 모든 것이 끝난 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철 (문과대ㆍ국문) 교수  kk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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