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甲이다

47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학생이 甲이다> 윤재은(정치대ㆍ정외3) 정후보는 올해 정치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또 ‘진실을 밝히는 건국대의 암행어사’의 창단멤버로 졸업연기제도 서명 운동, 조용곤 석좌교수 임용반대 등 학내문제뿐만 아니라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만7천 학우들을 甲 으로 만들기 위해 등장한 윤 정후보는 그동안 어떠한 길을 걸어왔을까?
 


 

정치대 학생회장으로서
소통: 정치대 소식지 발간, 강방 프로젝트 등
정치대학생회 <컨피던스>는 소통 측면에서 △정치대 백서 발간 △500 강방 프로젝트 △격주 정치대 소식지 발간 △소통 창구 마련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격주 정치대 소식지 발간’ 공약은 100% 이행됐다. 윤 정후보는 “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정치대학생대표자회의에서 ‘한 달에 두 번 이상, 단과대운영위원회와 관련된 일을 △대자보 △강방 △소식지로 알리지 않을 시 사과문 작성’을 회칙으로 제정했다”고 말했다. 또 강의실을 오백번 방문해 소식을 전하는 ‘500강방 프로젝트’는 <컨피던스>가 하루 두세 번 강의실을 방문하는 것으로 거의 500회를 달성했다.


복지: 상허 1층 인쇄실 PC 확대, 실험실습비로 신문 구독 등
<컨피던스>가 내세웠던 복지관련 공약으로는 △상허 INNOVATION 프로젝트 완수 △취업/진로가이드 △실험실습비로 신문구독 등이 있다. 시설개선 공약인 ‘상허 INNOVATION 프로젝트’는 상허관 내 휴게공간을 증대하고 복사기를 확충하는 것이다. <컨피던스> 오태경(행정2) 정치대부학생회장은 이 공약에 대해 “예산문제로 인해 개선시기가 조금 늦어졌지만 계획의 90%이상을 완료했다”고 말했다.
‘취업/진로 가이드’ 공약은 예산문제로 인해 학과에서 주도한 멘토ㆍ멘티프로그램을 통해 실현됐다. 이에 윤 정후보는 “단과대 차원에서 학과별 활동을 지원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쉽고 죄송하다”고 답했다.


공동체를 중시했지만 예산문제로 ….
함께 하는 공동체를 중요시했던 <컨피던스>는 △ 학회 등 소모임 지원 △정치대 문화 주간 △각종 기획단 모집 △같이 놀아요, <정대인 DAY >! 총 4가지 공약을 내세웠다.
‘학회 등 소모임 지원’ 공약은 소모임 지원을 늘리고 단과대 내 동아리연합회를 조직하는 것으로 실현됐다. ‘정대인 DAY ’의 경우, 예산 문제로 진행되지 못했다. 윤재은 정후보는 “학과, 소모임에 관계없이 정치대 학우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정대인 DAY ’를 기획했다”며 “예산문제로 이행하지 못해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암행어사 단장으로서
윤재은 정후보는 세월호 진상요구를 계기로 장대엽 (상경대ㆍ경제3) 전 동아리연합회장과 함께 ‘진실을 밝히는 건국대의 암행어사’(암행어사)를 조직했다. 이후 윤재은 정후보는 암행어사 단원으로 △세월호 진상요구 △이사장 퇴진 설문조사 △졸업연기제도에 관한 학우의견 수렴 및 복구 요구를 진행했다. 특히, 윤 정후보는 변경된 졸업연기제도의 복구를 요구하는 프로젝트에서 실천단장을 맡아 학우 3천여명의 졸업연기제도 반대서명을 받았고 이를 본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제일 아쉬웠던 점으로 이사장 퇴진문제를 꼽 았다. 윤 정후보는 “지난해 성사된 학생총회에서는 학우들에게 이사장퇴진을 약속했는데 올해 중앙운영위원회에서는 이사장 연임반대로 의제를 변경했다” 며 “이는 학우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다면 총학생회장 권한으로 이사장에 관한 정보를 보다 확보해 검토한 뒤 학우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사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외에도 윤 정후보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된 조용곤 석좌교수의 임용반대 기자회견을 열었고 박희태 석좌교수의 성추행사건에 대한 규탄 등을 진행했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활발한 활동에 대해
윤 정후보는 우리대학 내 사안 외에도 다양한 사회 활동에 뛰어들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부터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농민집회, 쌀 관세반대집회 등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학우들이 반대하는 사회활동에 대해, 윤 정후보는 “총학생회장 윤재은으로서는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정말 필요한 사회활동이라면 학우들을 최대한 설득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다수의 의견이 여전히 반대라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학생회장으로서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은서 수습기자 namues@konkuk.ac.kr

<학생이 갑이다> 박대상(생환대ㆍ사회환경시스템 공2) 부후보는 전역한 올해, 학생회 경력 없이 돌연 총학생회 선거판에 나타났다. 그는 여느 대학생들과 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군대를 갔다. 그런데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땐 평범 한 학우에서 평범한 학우들을 ‘갑’으로 만들기 위한 포부를 꿈꾸고 있다. 그는 어떻게 ‘평범한 학우’에서 ‘갑돌이’로 변했나?


평범한 학우로서 어땠나?
아르바이트와 공부로 쉴 틈 없이 살았다
2010년도에 생명환경대학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에 입학한 박 부후보는 신입생 시절부터 대학생활을 즐기기보다는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는 20살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4개씩 했다. 박 부후보는 “집안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스스로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며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과외 아르바이트를 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고 전했다.
그가 방위산업체를 선택한 이유도 ‘등록금’이었다. 그는 군대에 지원할 당시, 과도한 아르바이트로 그의 몸에 기흉이 생겼다. 그로인해 신체검사 4급 공익판정을 받은 것이다. 박 부후보는 “카투사 준비를 하는 도중, 병원에서 기흉으로 폐조직이 파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당장 수술이 시급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병원비 등을 생각해서 수술을 미뤘는데 결국 상태가 나빠졌다”고 전했다. 그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위산업체를 선택했다. 박 부후보는 “공익은 한달에 20만원인데 반해 방위산업체는 일이 힘들지만 공익보다 훨씬 월급이 많았다”며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방위산업체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방위산업체로 가게 되면 주로 2교대 8시간씩 근무해야 한다. 그는 한달에 2주는 주간 12시간씩, 2 주는 야간 12시간씩 3년 동안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했다. 그가 한 일은 △염산 △질산 △청산가리 △양잿물 △수산화나트륨 등을 고무장갑만 끼고 다루는 일이었다. 그는 방위산업체에서 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건축봉사동아리 ‘다솜모아’임원으로서
박 부후보는 올해 복학 후 우리대학 중앙 동아리 중 건축봉사동아리인 ‘다솜모아’에 가입했다. 그는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가 토목에 대해 많이 배운다” 며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다솜모아에 가입했다”고 계기를 전했다. 그는 동아리 부원들의 추천으로 임원을 하게 됐다. 박 부후보는 “우리는 건축작업을 하는 곳이므로 늘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며 “솔직히 올해 동아리에 가입해 많은 활동을 같이 하진 못했지만 투철한 안전의식 때문에 부원들이 임원으로 뽑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가면 항상 동아리 부원들에게 장갑착용 등 안전에 대해 주의를 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솜모아를 통해 집짓기, 벽화 봉사활동 등을 했다.
 

‘갑돌이’ 돌연 어떻게 나타났나?
“평범한 학생도 총학생회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올해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박 부후보는 취득학점포기제도, 졸업연기제도 등 ‘대학이 학우들을 도와주지 않는 것 같다’는 섭섭한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답답한 마음을 안고 있을 때 친구 소개로 윤 정후보를 만나게 됐는데 얘기가 잘 통했다”며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윤 정후보에게 부후보 제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윤재은 정후보는 “박 부후보의 성실한 이미지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며 “이사람이라면 학우들을 위한 총학생회를 함께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출마제의에 대해 답했다. 또 그는 “그동안의 총학생회 후보자들을 생각하면 솔직히 박 부후보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기에 조금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의 총학생회장들을 생각해보니 집안 경제력이 뒷받침되고 학생회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며 “그래서 ‘이렇게 열정과 의지가 있다면 평범한 사람도 총학생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총학생회 출마를 결심한 박 부후보는 “후회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며 “열심히 해도 안 되면 ‘내 탓’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한번이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것 때문에 그런 건가’라는 생각에 계속 휩싸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박지수 기자 rhehf333@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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