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작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명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묘지산책>연작, <돼지 잡는 날>, <언어의 세계> <부검 결과 레포트> 등이었습니다.

일정한 밀도와 완성도를 지닌 이 시들이 한결같이 죽음을 다루거나 부재의 무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왜일까요? 오늘날 청년들의 어두운 자화상이나 내면풍경을 엿본 것 같아 제 마음도 안타깝고 무거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두움과 언어로 싸우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것은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지요. 

<부검 결과 레포트>는 새로운 형식의 도입과 언어의 압축미를 보여주었지만, 이 한 편만으로는 시적 역량을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언어의 세계>는 말의 무게와 질감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좋았지만, 아직은 관념이 생경하고 직설적인 대목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는 듯 합니다.

<돼지 잡는 날>의 필자는 다양한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고, 특유의 시적 에너지와 관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서사와 묘사가 시를 잘 읽히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고, 주관적 감상에 젖지 않고 시상을 유쾌하게 잘 이끌어나갑니다.

그러나 인식의 깊이가 담보되지 않으면 이런 특징은 장점보다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시적인 대상들에 더 침잠해 내면의 깊이를 확보해나가면 좋겠습니다.

당선작으로 뽑은 < 休家 - 묘지 산책2> 는 자아와 대상이 적절한 틈입을 통해 서로 교감하면서 아름답고 비극적인 세계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묘지 산책>을 연작 형식으로 쓸 만큼 죽음에 관한 어떤 트라우마가 그의 정신에 강력
하게 드리워져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환기되는 가족이나 관계의 문제들입니다. 대상을 포착해내는 비범한 감각과 그것을 침착하고 간결하게 받아적는 문장들이 오랜 시적 내공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두 편 모두 산문시 형식과 비슷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유사한 모티프들이 등장한다는 것은 자기반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두 편 중에서 이미지의 변주가 좀더 다채롭고 확장된 시야를 보여주는 < 休家 - 묘지 산책2>을 당선작으로 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나를 지켜보 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마지막 문장처럼, 그 시선들을 놓치지 말고 시의 길을 잘 걸어가십시오, 산책자의 정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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