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리 가진 못했네요. 오래 헤매다 돌아온 자리가 여전히 따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 캄캄한 방에 환한 창을 내어준 기분입니다. 그 창으로 더 많은 풍경을 보겠습니다. 가끔은 밖으로 나가 따뜻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오겠습니다. 외로운 사람을 만나면 손을 잡아주겠습니다. 사실 시를 사랑하는 일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짝사랑도 오래 하다보니까 이렇게 말이라도 붙여 볼 날이 오는군요. 산다는 게 깨지 않는 악몽 같을 때, 한없이 외로워서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을 때마다 시가 어깨를 흔들어 깨워주고 곁에 있어 줬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시 같은 걸 써보겠다고 지새운 많은 밤들을 기억합니다. 연필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조용히 시를 읽는 목소리, 행과 행 사이의 숨소리를 기억합니다. 인천의 바다, 일감호의 달과 오리들, 남해의 수평선과 제주의 하늘, 서울의 지하철과 매일 아침 지나는 한강 풍경을 기억합니다, 어쩔 수 없이 시를 떠난 많은 친구들을 기억합니다. 그들과 함께 나눈 시와 술잔을 기억합니다. 죽은 사람과 죽어서도 곁에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 모든 게 제겐 시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혼자서 쓴 시는 아무 것도 없는데 저 혼자 이런 칭찬을 받아도 정말 괜찮을까요.

제 선택과 결정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곁을 묵묵히 지켜주어서 고맙습니다. 또렷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날들 속에서 여전히 불확실한 것들을 사랑하고 꿈꾸겠습니다. 무엇보다, 시는 사람이 쓰는 것이므로 먼저 사람이 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이렇게 과분한 자리에 올려주셔서 부끄러운 마음뿐입니다. 더 열심히 살라는 격려로 이해하겠습니다. 이 계절의 한 페이지를 여기에 접어 두고 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접힌 자국을 평생 갚아야 할 빚으로 알고 살겠습니다. 이 추운 겨울, 제 손을 잡아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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