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연탄을 나눠주는 강원도의 ‘연탄은행’

추운 겨울. 따뜻한 소식을 전해 주는 기분 좋은 은행이 생겼다. 바로 원주 작은 길목에 위치한 ‘연탄은행’. 이 곳은 300원하는 연탄 한 장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이 무료로 연탄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사랑은행”이다. 평소에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연탄을 기부한 사람들이 벌써 300명 가까이 된다.

▲ © 김혜진 기자

연탄은행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허기복(48) 목사다. 그는 “주변에 300원이 없어 냉방에서 자고 있는 분들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작은 돈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어서 보람차다”고 말한다. 원래는 150장씩 저장해 놓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개방만 해 놓았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2번씩 배달도 해준다. “외지에 사시는 독거 노인 분들은 3.5kg이나 되는 연탄을 쉽게 들고 가지 못한다”며 배달을 시작하게 됐다는 허목사. 그래도 일손 부족으로 필요한 곳에 충분히 전달 못하는 점을 아쉬워한다.

조그만 회색 나무 박스에 가득 담겨 있는 검은 연탄들. 연탄 하나 하나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온정이 추운 겨울을 더욱 따뜻하게 밝히는 것 같다. 마침 덥수룩한 하얀 수염에 약간은 오래돼 때가 탄 잠바를 입은 권오흥(67)씨가 연탄은행을 찾았다. 짚으로 엮은 연탄 하나를 들고 가며 “우리 같이 어려운 사람들은 연탄 없으면 얼어 죽어”라고 말하는 그는 “예전엔 전기장판 위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써도 창문으로 새는 바람 때문에 덜덜 떨었다”며 시린 생활을 기억했다. “연탄은행이 없을 땐 돈이 걱정돼서 추워도 아껴서 땠는데 요즘은 따뜻하게 보낸다”고 만족스러워 하는 이춘자(81) 할머니. 평소 당연시 여겨지던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그녀의 미소에 부끄러워지는 것은 왜일까?

처음 찾았던 연탄 은행을 벗어나 20분 정도 걸어가니 오래된 철도 다리 밑에 연탄은행 3호점이 보인다. 마침 인적 드문 도로를 걸어오는 어떤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검은 비닐 봉지를 가지고 연탄은행으로 들어간다.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그는 “기름 값이 비싸져 집에 있는 보일러를 사용할 수 없어 난로에 쓰려고 가져간다”며 연탄을 집어든다. 잠시 양손에 들었던 연탄을 골목 슈퍼 구석에 놓고는 “조금 있으면 무료 배식 시간이 끝난다”며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그. 연탄은행에서는 무료배식도 하고 있다.

잠시 눈길을 돌린 사이 또 다른 사람이 연탄은행에 들어갔다. 검은 연탄재가 묻어 있는 빨간 양동이를 연탄으로 가득 채워 도망가듯이 자리를 피하는 아주머니. “연탄 때문에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다”며 웃기만 하는 아주머니는 무거운 수레를 힘겹게 끌고 언덕을 올랐다.

우리에게는 고기집에서만 볼 수 있는, 가끔 옛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한낯 입담의 소재밖에 되지 않은 연탄. 2004년이 시작되는 겨울. 아직까지도 우리 가까이에는 ‘낭만’이 아니라 ‘생존’으로 연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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