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새 디지털 싱글 <새해 복>의 뮤직비디오가 지난 2월 11일 발매됐다. 이 뮤직비디오는 장기하가 노트에 노래가사를 적는 내용인데, “새해 복만으로는 안 돼/네가 잘해야지/노력을 해야지”가 주된 가사다. 마지막에 “새해 복만으로도 돼”라는 가사가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그 가사는 “새해 복만으로도 돼/절대 잘하지 마/노력을 하지 마”라는 내용이다. 반어법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 노래에서 하고 싶은 말은 “어쨌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일 것이다. 하지만 의도가 무엇이든 이 노래가 말하는 것은 결국 ‘열심히 살라’ ‘노력하라’다. 당연한 인생의 진리인 이 말이 눈꼴시어 보이는 것은 간주 부분에서 장기하가 “여러분, 그냥 여기까지만 보세요. (…) 이럴 시간에 뭐라도 하세요. 남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요. 정신 차리세요. 열심히 사세요.”라고 쓰기 때문이다. “이럴 시간에 뭐라도 하세요.”라는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흔히 말하는 ‘이럴 시간’에 하고 있는 일들을 우리는 ‘잉여롭다’고 표현한다. 또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잉여’라고 칭한다. 다분히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단어다.
 서울 지하철 플랫폼의 ‘스크린도어 시’가 눈길을 끈다. 스크린도어에 기성 시인들의 작품과 시민공모작들을 소개해 놓은 것이다. 이들 작품에 대해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1분 1초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끔찍한 생각이 거기까지 시를 끌어들였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 사회에서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까지 “시를 읽는다”는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다들 이렇게 말한다. “이럴 시간에 뭐라도 해.” 우리가 멈춰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쳐 앞서갈 것이라는 악몽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번호 문화부기획에서는 스타트업과 청년창업에 대해 다루며 외국에서 학생 스타트업이나 학생 창업이 흥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같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고, 이야기하고, ‘잉여롭게’ 노는 시간에 생산적인 생각들이 떠오른다는 거였다. 기사를 쓸 때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잉여롭게’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기사를 쓰는 것과 관련 없는 일들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번뜩 하고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가 떠오른다. 이럴 시간에 안 써지는 기사를 붙잡고 “빨리 써야 하는데…” “왜 안 써지는 거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도 기사가 써지지는 않는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놀자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럴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한다”라고? 그 말을 듣는 시점에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잉여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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