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가장 큰 성과는 자기만의 맞춤형 경기장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입고 다니기엔 너무 민망하거나 몰상식해 보이는 슈트를 주인공에게 입히지 않으면 이 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다. 정 뭔가 입힐 게 없으면 눈에 띄게 촌스러운 색깔의 페인트라도 뒤집어씌워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입장한다면, 마법의 단어 ‘마블, 영화, 치고’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9월 3일 개봉한 <앤트맨>은 ‘투기장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블랙유머의 창을 들고 온 경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이 좁아터진 경기장에서, <앤트맨>은 가히 도토리 무더기 위의 알밤만큼이나 독보적이다.

 솜씨 좋고 준법정신이 희미한 전과자 이혼남이 반 강제로 초인적인 힘을 지닌 도둑이 된다는 설정은 ‘마블 영화 치고’ 확실히 파격적이다. 시종일관 적절한 타이밍에 배치돼 있는 유머도 ‘마블 영화 치고’ 세련되고 노련하다. 첩보영화를 연상시키는 초중반의 분위기도 ‘마블 영화 치고’ 상당히 긴장감 있다. ‘마블 영화 치고’ 간만에 즐거운 영화를 만났다.

 이미 <앤트맨>을 본 독자라면 위의 평이 썩 야박하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는 굳이 저 마법의 단어들이 붙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코미디 영화임은 분명하다. 보다보면 이 영화가 어린이 만화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을 차츰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마다 어김없이 ‘벌레만한 크기의 병사’를 찬미하며 개미에 총을 쏴대는 어린이 만화책 악당이 나오기 때문에 결국 현실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앤트맨>은 훌륭한 범죄ㆍ첩보 코미디가 될 수 있었다. 다만 그 위에 ‘마블 시럽’ 한 스푼 끼얹은 게 불필요한 아쉬움이다. 이참에 다음번에는 ‘빌런(악당) 없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한 번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슈퍼히어로 영화 특유의 독특한 인물 및 배경 설정에 설득력 있는 플롯만 살짝 올리면 참으로 멋진 영화가 될 텐데 말이다.

 가만, ‘시빌 워’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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