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교수

86학번 정치대 정치외교학과 입학

86년 10.28 건대항쟁 참여

현 지역정책연구소 성장과 나눔 대표

  10.23 건대 민주항쟁을 직접 겪은, 학생운동 세대를 이끌었던 김상진 교수를 만나봤다. 정치대학 1대 학생회장이기도 한 그는 이번 학기에 정치외교학과 교양과목 '인터넷과 여론'이라는 공동강의를 맡으며 다시 교정으로 돌아왔다. 그가 들려주는 10.28 건대항쟁, 첫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청년들에게 하고픈 말에 대해 귀 기울여 보자.

 

  Q.입학년도인 1986년도에 10.28 건대항쟁이 일어났는데요.교수님도 항쟁에 참여했나요?
 10월 28일 전날에 선배들하고 동기들하고 같이 화염병도 만들고 집회 준비를 했었어요. 군부독재시절이었으니 학생들이 사회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지요. 항쟁 당일, 건대부속고등학교 쪽에서 엄청난 인원의 전경들이 학교로 막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같이 집회하던 학생들이 전경들한테 밀리면서 △문과대학 △제1학생회관 △행정관 △사회과학관(현재 경영관)으로 들어갔어요. 그때 저는 문과대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문과대로는 사람들이 별로 안들어오고 대부분 학생회관, 행정관, 사회과학관 쪽으로 많이 몰렸어요. 게다가 그날 교련과목이 있어서 저는 군복과 비슷한 교련복을 입고 있었어요. 그날 의상과 건물 선택 덕분에 전 당일 저녁에 문과대에서 나오게 됐습니다.(웃음)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당시 학교는 아비규환 상태였어요. 위에는 헬리콥터가 감시하고 밑에서는 수류탄, 화염병이 난무하고 건물 내 전기를 모두 차단시키고….행정관에서 사회과학관으로 줄을 연결시켜서 학생들끼리 매점에 있던 음식물들을 전달하고 했었죠. 집회 참가했던 학생들은 처음부터 점거 농성을 할 계획이 없었어요. 그런데 전경들이 몰려오니깐 건물로 도망치고 그렇게 학생들이 많이 들어간 건물이 점거 농성장이 된 거죠.
 건대항쟁을 계기로 고립된 학생운동을 피하고 대중적인 학생운동을 일으키자는 경향이 일어났습니다. 87년부터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학생회를 통해 대중운동을 하자는 의식 고취됐어요. 당시에는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지지하고 존경했었어요.
 
  Q.제1대 정치대 학생회장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88년도에 제1대 정치대 학생회장에서 출마해서 당선됐습니다. 학생회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신입생 수련회(현재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를 만든 것이에요. 당시에는 정부나 학교 측에서 학생회가 학생들을 데리고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어요. 학생들이 의식・세뇌 화 시킨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치대하고 문과대에서 처음으로 신입생 수련회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학교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니깐 당연히 수련회 예산을 지원해주지 않았어요. 그때 우리 정치대 학생회 임원들이 1학기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고 등록금으로 수련회 예산을 마련했습니다. 선 집행을 한 것이죠.(웃음) 당시에는 학생들의 힘이 컸습니다. 학교에서 학생회가 강력하게 나가면 벌벌 떨었죠. 그렇게 밀어 부쳐서 88학번 새내기들과 함께 대성리 유스호스텔로 갔습니다. 88학번이 신입생 수련회 첫 대상자가 된 것이죠. 그런데 새내기들도, 같이 다녀온 보직교수들도 신입생 수련회를 호평했어요. 그래서 그 이후 다른 단과대들도 신입생 수련회를 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죠. 선배와 신입생, 교수와 신입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름 뿌듯합니다.(웃음)

 

 Q.졸업 이후, 청와대(김대중 정부) 행정관,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지내시다가 이번 학기에 정치외교학과 교양과목인 ‘인터넷과 여론’을 공동강의하고 계시는데요. 다시 학교로 돌아오신 소감이 어떠세요?
 저는 학교를 정말 오래 다녔기 때문에 학교 교정 곳곳에 추억이 담겨 있어요. 학과를 12학기를 다녀서 졸업했어요.(웃음) 사실 재학시절 때는 학생운동하고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토론하는 게 좋아서 딱히 대학을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93년도에 군대를 전역하고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죠. 김영삼 정부 때 이미 학생운동은 퇴화되고 사회분위기도 민주화, 통일을 외치지 않는 세상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나도 ‘대학은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니 감개무량 합니다. 한때 일감호를 보며 젊은 날의 이상을 고민했는데, 이제는 일감호를 보며 후배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후배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얻게 됐어요. 공동강의라서 아직까지는 후배들하고 밀도 깊게 얘기해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Q.현재 청년들의 모습과 교수님의 청년시절 모습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지금의 청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많이 다르죠. 예전에는 먹고 사는 게 힘들어 일자리 걱정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어린 시절 부유하게 자랐지만 그들이 어른이 돼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드니깐 큰일인 거죠. ‘일’이라는 게 생활을 영위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데, 요즘 청년들은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니까. 참 이런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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