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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를 찾아서2015 제6기 PRIDE KU 해외교육기행
권동욱 기자 | 승인 2015.11.11 17:15
지난주 11월 2일부터 7일까지, 면접을 통해 선발된 30여명의 학우들과 학생복지처 학생지원팀이 함께한 2015 PRIDE KU 해외교육기행(교육기행)을 다녀왔다. 이번 교육기행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고취하고 고구려의 문화유적 답사와 백두산 탐방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키우기 위해 진행됐다. <건대신문>은 5박 6일간 중국 △심양 △단동 △통화 △환인 등의 지역과 백두산을 탐방하고 돌아온 ‘교육기행 탐방단’과 동행해 올바른 우리 역사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을 취재했다.

잃어버린 우리 땅, 간도
5박 6일간의 일정을 소개하기에 앞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동북공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잃어버린 우리의 땅, 간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두만강 위쪽 지역인 ‘북간도’ 지역을 왕래했다. 하지만, 이렇게 국경을 넘나드는 행동은 명나라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후 명나라가 망하고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는 이 문제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조선 숙종 때 청나라와의 합의를 통해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만강을 두 나라의 경계로 한다는 ‘서위압록 동위토문’이라는 국경을 설정했다. 동쪽으로는 토문강까지 조선 영토로 합의했기에 토문강 이남 지역인 북간도 지방 역시 우리 땅으로 합의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비석인 ‘백두산 정계비’를 백두산 중턱에 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100년이 흐른 고종 때(1880) 중국은 토만강을 두만강이라 주장하며 북간도 지방을 중국 영토라 주장한다. 고종 이후 ‘백두산 정계비’가 소실되면서 토만강이 정확히 어떤 강인지 파악할 수 없게 되면서 분쟁지역으로 남게 된다. 이후 1909년,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푸순 탄광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간도지역을 청나라에 넘긴다는 ‘간도협약’을 청과 맺게 된다. 이로 인해 간도지방은 중국 영토가 돼버렸고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을사늑약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외교권이 일본에 박탈되면서 간도협약을 우리나라와 청나라가 아닌 일본과 청나라가 맺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당시 을사늑약은 ‘을사오적’의 도장만 찍혔을 뿐 고종의 직인이 찍히지 않았기에 을사늑약은 무효가 될 수밖에없고, 따라서 일본이 체결한 간도협약 또한 무효가 되게 된다. 이처럼 국제법상 간도 지역은 우리나라 영토가 맞지만, 아직 우리 영토를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
이처럼 만주 지역이라고도 불리는 북간도, 서간도 지역 일대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중국은 50여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로, 1980년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워 소수민족 정책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소수민족들의 이탈을 막고 여러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중국 영토 내에서 전개된 역사를 모두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했다. 실제로 티베트 족의 이탈을 막기 위해 서남공정이 이미 진행됐고, 위구르족의 역사를 편입하는 서북공정 또한 이미 완료됐다. 중국은 이미 2001년 6월에 동북공정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기로 결정한바 있다. 2006년까지 진행하기로 계획했지만, 중국의 잘못된 역사 왜곡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고조선·고구려·발해 등은 고대 중국의 동북지방에 속한 지방정권이라는 전제 하에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르면 고구려는 중국 북방의소수 민족 정권인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 역사의 출발점인 고조선 역사 뿐 만 아니라 동북아를 장악했던 고구려 역사, 발해 역사는 분명 우리 역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1월 2일, 1일차


역사기행 첫째 날, 인천공항을 출발해 중국 심양 공항에 도착하자 뿌연 하늘과 중국어의 빨간 간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 날은 북릉과 동북대학교를 방문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심양의 북릉. 이곳은 청 태종과 효단문황후의 능이며 1927년에는 공원으로 탈바꿈해 북릉 공원이라 부른다. 비수기라 그런지 비교적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동북대학이다. 동북대학은 우리 대학과 교류를 맺은 학교로 동북대학을 방문해 학교의 역사와 현황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캠퍼스 투어도 함께 진행됐는데, 넓은 캠퍼스와 좋은 학교 시설에 탐방단 학우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11월 3일, 2일차


두 번째 날, 비교적 쌀쌀한 겨울 날씨였기에 탐방단 학우들은 두꺼운 옷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 날은 압록강 단교를 올라가 본 후 호산장성 방문, 압록강 유람선 승선 순으로 일정이 진행됐다. 탐방단은 먼저 압록강 단교로 향했다. 압록강 단교는 원래는 중국과 북한을 잇는 철교였지만 6.25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는 중국 쪽 다리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이후 탐방단은 호산장성을 방문했다. 호산장성은 대표적인 동북공정의 현장이었다. 사실 이곳은 고구려의 박작성이지만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호산장성의 입구에는 ‘The Great Wall entrance’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희원(글융대.과학인재1) 학우는 “중국 동북공정의 진실에 대해 알지 못하고 방문했다면 그냥 멋지다고 생각하고 돌아올 수도 있었는데, 사전에 공부를 하고 동북공정의 현장을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화가 났다”며 중국의 잘못된 역사 왜곡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탐방단은 압록단 유람선을 탑승해 북한 주민들을 근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탐방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은 탐방단의 인사에 무심해 보였다. 이건희(예디대.산업디자인3) 학우는 압록강에서 북한 주민들을 본 것에 대해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며 “군 시절에 최전방에 근무를 했는데, 그때도 볼 수 없던 북한 군인들과 실제 생활하는 북한 주민들을 보니까 만감이 교차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11월 4일, 3일차


이 날은 백두산 탐방이 이뤄졌다. 백두산 천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지를 맑은 날에 보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탐방단이 백두산을 탐방하기로 한 이 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고 날씨가 정말 좋았다. 셔틀버스와 10인승 차량을 이용해 백두산 천지에 다다른 탐방단 학우들은 웅장하고 위엄 있는 천지의 모습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김광호(건축대・건축설계2) 학우는 “천지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천지의 신비롭고 영롱한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고 모래가 눈과 코 귀까지 들어가는 상황이었지만 천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일분일초라도 더 보고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탐방단 학우들은 계속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이후 탐방단은 백두산 장백폭포와 노천온천지대를 탐방하고 통화로 이동해 일정을 마무리 했다.

권동욱 기자  iwook27@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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