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조정래 감독 인터뷰

아픈 역사를 묻어두기만 할 것인가? 후세대라면 역사 속에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 온 우리 민족의 아픔을 보듬어야 할 의무가 있다. 13년 동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있다. 바로 영화<귀향>의 조정래 감독이다. 제작부터 배급까지 13년 간 순탄치 않은 길을 걷고 있지만 “타지에서 돌아가신 소녀 분들의 혼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던 의지 하나로 버티고 있는 조정래 감독을 만나봤다.

영화「귀향」은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야만 했던 여러 명의 소녀들, 그리고 그 소녀들이 견뎌야만 했던 처참하고 가혹한 사건들, 해방이 된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소녀들의 이야기를담고 있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및 자료조사 등을 통해 강제징용의 과정과 위안부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또 해방이후 일본이 위안부 강제징용을 은폐하기 위해 우리 소녀들에게 어떤 끔찍한 일을 자행했는지도…. 그러나 이러한 영화 내용으로 인해 조정래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조 감독은 시민들의 후원과 재능기부 등을 통해 13년 만에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귀향은 현재까지 위안부 강제 징용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게, 그리고 일본에게 제대로 보상을 요구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에 대한 일침이며, 후세대가 보내는 위로의 영상이다. 귀향은 올해 광복절에 개봉하려고 했으나 투자・배급사를 찾지 못해 개봉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조 감독은 베를린 영화제에 귀향을 출품하기 위해 현재 작업 중이다. 또 국내 개봉은 2016년 3ㆍ1절을 목표로 하고 있다.

Q. 나눔의 집 봉사활동과 위안부 피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어떠한 부분을 영화에서 중점을 두고자 했나요?
위안부피해자 소녀 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널리 알릴 수 있을까에 가장 중점을 맞췄습니다. 우리 영화의 가장 큰 목표는 아무래도 타국에서 돌아가신 소녀 분들의 영령 앞에 밥 한술 올릴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13년 전,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그림 한 장을 봤을 때였습니다. 그 그림은 1991년 강일출 할머니께서 미술심리치료과정에서 그리신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입니다. 강일출 할머니는 1943년 16살의 나이에 ‘보국대를 뽑는다’는 순사의 말에 납치되듯 위안소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할머니는 중국 심양, 장춘, 목단강 등의 위안소를 거치며 장티푸스를 심하게 앓게 돼 병든 위안부 소녀들이 던져 진 불구덩이에 던져지게 될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때 독립군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나시게 됐고 이 그림은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무려 20만명이 넘는 어린 소녀들이 하루에 2~30명의 병사들을 상대하는 성노예로 살면서 병으로, 구타로, 고문으로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분들의 영혼이나마 고향으로 모시고 싶어 영화를 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 수많은 피해자 할머니분들의 증언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쓰게 됐습니다. 마치 제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저 받아쓰는 대필 작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머니들께서 옆에서 말씀 해주고 계신 듯했습니다. 저는 그저 할머니들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대필했으니 이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이미천한 능력으로 잘 담아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Q.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영화의 배경은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3년입니다.주인공은 크게 소녀 2명입니다. 위안부로 끌려 간 ‘정민이’와 타지에서 위안부로 죽은 영혼을 다시 고향으로 부르는 무녀 ‘은경이’입니다.정민이는 14살 꽃다운 나이의 평범한 소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 손에 이끌려 다른 소녀들과함께 머나먼 목단강에 위치한 위안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정민이와 소녀들은 ‘성노예’로 살면서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과 감당할 수 없는 모진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후 1991년, 은경이라는 무녀는굿을 통해 타국에서 돌아가신 피해 소녀들을 다시 고향으로 모셔옵니다.

Q. 소재가 무거운 만큼 감독님과 출연진 모두 영화 제작 당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촬영 당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이나 일화가 있나요?
아무래도 소녀들이 태워지는 장면을 촬영 할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 처참한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니 너무나도 가슴이 무너지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또 해당 장면을 촬영하는 당시에 불이 너무나 크게 타올랐습니다. 저와 스텝, 배우들 모두 타국에서 돌아가신 영령들의 아픔을 정말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드라마 ‘각시탈’의 경우 배우들의 일본진출 우려 때문에 각시탈 배역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귀향’은 출연진 섭외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나요? 
귀향의 경우, 오히려 배우 분들께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주셨습니다. 손숙 선생님을 비롯한 정말 좋은 배우 분들께서 거의 재능 기부에 가까운 수준으로 참여해주셨습니다. 또 일본어 구사 문제 등이 있다 보니 재일교포 배우 분들이 많이 출연하시게 됐습니다. 재일교포 배우 분들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비용까지 전부 개인이 부담해가며 영화에 출연을 해주셨습니다. 사실 재일교포 분들께서 우리 영화에 출연한다는 건 한국 배우 분들과는 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잘돼서 세상에 알려지면 그들은 당장 생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신변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배우 분들 한 분 한 분이 저에게 “자긴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늘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귀향할 수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Q.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를 찾지 못해 대부분의 제작비를 국민 후원금(뉴스펀딩)으로 마련했는데요. 투자자 기피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민 분들의 후원금으로 거의 영화 제작비 100%를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우리 영화는 국민분들께서 만들어 주신 영화입니다. 영화에 참여해주신 스텝, 배우분들 또한 거의 재능기부에 가까운 형식으로 만들어져 제작비, 제작진 모두 자발적인 후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시장의 투자기피 현상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저도 그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소녀들이 타국에서 돌아가셨는데 이 부분은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올바르게 알아야 할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상처는 가만히 놔둘수록 곪기 마련입니다. 비록 아픈 역사는 불편할 수도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분명하게 기억해야하는 역사입니다.


Q. 영화 ‘귀향’이 우리사회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시나요?
영화 제목 그대로, 꽃피지 못한 채 타지에서 돌아가신 소녀 분들이 귀향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가 한번 상영될 때 마다 한명의 영혼이 집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또 귀향은 과거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기 위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현재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공식적으로 47명입니다. 더 늦기 전에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며 울고 싶습니다. 또 귀향을 통해 현재 일본이 인정하고 있지 않은 위안부 역사를 국제사회에 올바르게 알리고 싶습니다.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할머니들과 같이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간혹 우리 영화를 반대하시는 분들은 일본과의 관계를 근거로 듭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반일영화가 아닌 ‘반전’영화입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만들어낸민족의 아픔을 고발하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도 전쟁은 계속 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평화의 도구로 이 영화가 사용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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